[읽기 쉬운 베드로전서강해]#11. 4:12-19, "불 시험"

2024. 8. 21. 17:50베드로전,후서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겪게 될 고난들을 내다보면서 그리스도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직면한 문제는 아무도 박해받거나 학대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근원적 문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여전히 고난과 박해를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에 답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인용합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배반당하시던 그 밤에 직접 인용하셨던 구절을 보면(14:27), 예언자는 매질당하고 죽임 당하는 ’목자‘에 대해 말합니다(13:7). 예수님은 그것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예언으로 보신 듯합니다.. 그러나 그 직후에, 여전히 그분의 제자로 남은 이들은 불 속에 던져져 은이나 금처럼 연단이 된다는 것입니다(13:9). 목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을 악의 세력에서 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불같은 시련의 시기를 예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이 서신이 기룩될 때에는(64년쯤) 기독교 박해가 다소 완화되고 부분적으로 행해졌지만 점차 로마 제국 전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본격적으로 그 정도가 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불 질렀다는 누명을 씌운 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헤롯당에 의해 끊임없이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란데 베드로는 불같은 시련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놀라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전히 불같은 시련의 시기를 예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성경이 예언한 것입니다. 박해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여러분은 그것을, 상황을 완전히 변화시킬 올바른 길을 위하여 있는 도로 표지판으로 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14-15,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본문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즉 메시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려분께 하나님의 복이 있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 위에 머무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해자들은 여러분이 메시아로 알려진 예수께 속했다는 이유로 여러분을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고 그분께 왕의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모든 위엄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박해자들이 여러분에게 내리기 원하는 저주가 오히려 축복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고난과 비방을 당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비방하거나 범법자로 정죄하려는 자들에게 약점이나 구실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16-17,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그리스도인들이 예수로 인하여 박해를 하는 자들이 원하는 저주가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것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알게 되었듯이, 그것은 메시아의 이름이 붙는 엄청난 특권입니다(5:41). 그것은 당신도 왕족에 속한 사람으로 알려진다는 의미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그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성전 건축의 책임자이신(2:4-5) 메시아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영으로 오셔서 당신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그 찬란한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입니다. 다시 한번 베드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 심판의 눈높이에서 보아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신실한 백성의 무죄를 입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명백한 악인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4:18-19,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하나님이 신실한 백성들이 최종적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서, 이 심판이 덜 심각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12-15에서 주장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심판이 있을 것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을 테지만 일부는 불을 통과해야만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것을 훨씬 더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의로운 사람이 가까스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하고 가장 사랑이 많은 사람도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며, 여전히 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란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보여 주신 은혜와 자비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베드로는 선한 일을 실행하여하나님께 자신들의 삶을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규범을 지키고 깨끗하게 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것이란, 그보다 훨씬 적극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가족 안에서, 또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 새로운 사랑, 새로운 친절, 새로운 지혜를 실전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면 나타나는 선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고난을 맞닥뜨린다 해도 저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계속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생활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