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베드로전서강해]#13. 5:8-14. "마지막 권면'

2024. 8. 23. 16:48베드로전,후서강해

 

인류가 말라리아가 어떻게 퍼지는지 학자들이 발견했을 때, 열대 의학은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열대 지방의 저지대 습한 곳에 서식하는 수백만 마리의 모기가 그 병을 옮기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인류는 말라리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 서신의 상당 부분에서 우리는 주변 비기독교 문화에서 박해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부는 보통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하고 외면하거나 가끔 폭력을 사용하는 비공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지방 당국이 개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힌 것 같은 공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는 인간 적들을 문제의 진짜 근원으로 여기고 그들을 악마로 묘사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기처럼 이 적은 특히 무지한 상태에서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 적이 베드로는 마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짜 마귀와 실제로 대면하는 실제 영적 전쟁을 실제보다 덜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c.s. 루이스가 쓴 유명한 책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책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마귀를 뿔과 발굽이 달렸고 빨간 타이즈를 입은 우스광스러운 작은 사람이라 여기며 마귀라는 개념을 묵살해 버립니다. 그들은 그런 피조물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귀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귀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삶의 일상적인 모든 문제나 다른 사람의 성격상의 어려움을 마귀의 직접 간섭 때문으로 여깁니다. 루이스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지혜로운 길을 갑니다. 즉 마귀의 존재를 너무 무시하지 말고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이런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귀의 존재와 능력을 인식하고 그가 죄를 짓도록 우리를 유혹할 뿐 아니라 박해와 고난의 배후에 있다고 보는 법을 배우면,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과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베드로는 그 적을 묘사하는 데 보다 뚜렷한 동물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적을 삼켜 버릴 누군가를 찾아 울부짖는 사자 같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본문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단순한 먹다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 단어는 사자가 당신을 한입에 꿀꺽 집어삼킨다는 어감인 것입니다. 저항하거나 몸부림칠 시간도 없이 바로 먹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무서운 이미지로 그리스도인이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귀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대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은 개인적인 것을 떠나 전 교회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누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딤후 3:12)

 5:10-1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마귀는 박해와 다른 공격들로 우리들을 통째로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들의 믿음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인간성 전체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1:14,2:11) 살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불같은 시련은 불이 은과 금을 정련하듯 우리를 정련하여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불순물들을 태워 버리고 순수한 금과 은를 만들기 위해서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바로잡으실 때 그렇게 밝게 빛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불안을 느끼고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든든한 기초에 대한 약속은 우리가 기쁘게 꼭 붙잡아야 할 약속인 것입니다. 특히 모든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약속이 이 약속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12-14,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대 서신들에서 흔히 그렇듯이 끝 부분에 서신을 쓰는 이유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서신을 터키의 교회들에게 전하러 가는 실루아노가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한 동료였던 ’실라‘라 불리던 그 사람인지(’실라‘와 ’실루아노‘는 같은 이름의 변이형이라고 한다), 혹은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를 쓸 때 함께 있다고 언급한 ’실루아노‘인지 잘 모릅니다. 이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또 베드로가 언급하는 ’바벨론‘이 요한계시록에서처럼 ’로마‘를 가리키는 암호인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언급되는 마가는,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만나고 다시 골로세서, 빌레몬서, 디모데후서의 말미에서 만나는 요한 마가가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고대 터키의 소규모 신자들 모임에서는, 당시 점점 심해지던 박해를 겪으며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방향을 잘못 돌린 것은 아닌지, 거짓 메시아 예수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염려에 대해 베드로는 본문에서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은혜가 하나님의 참된 은혜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는 베드로의 말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이 항상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그의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지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참 메시아시며, 언젠가는 참 메시아로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은혜다라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확고하게 서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베드로가 분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란 말은 상황이 힘겨울 때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