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베드로전서강해]#2. 1:10-21. "그리스도의 영광"

2024. 8. 6. 17:32베드로전,후서강해

 

인간들은 본래 지음 받은 목적이 아닌 온갖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헛된 관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메시아의 고귀한 피를 지불하셨습니다. 베도로는 본문에서 밝히듯이 성경에 나오는 희생제물로 사용한 어린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학대받던 종살이에서 되사오셨던순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 역시 우리를 속량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초에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으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선지자를 통해 그것에 대한 근거를 보여 주고자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천사들과…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베드로는 자신이 권면하는 것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일어난 갑작스러운 극적 사건들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 사건들, 즉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성령의 오심, 초기 기독교 운동의 발흥과 확산과 같은 것들은 옛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서 알아낸 하나님의 계획이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 우리의 현재 시간과 하나님의 미래 시간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됨으로써, 그분의 계획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곧 그것은 그분이 택하신 이, 그분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의 고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그런 다음 메시아를 영광가운데, 즉 세상의 통치자로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을그 처한 곳에서 구해내시고, 그들에게 아주 놀랍고 영광스럽고 새로운 운명과 소망을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가 어느 정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듯, 예언도 절대도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무슨 말을 하면 그 다음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어날 수도 있고,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은혜를, 이 한량없는 은총을 우리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13~17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은혜에 관해 설명한 후 그 은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생활 태도가 변하고 주어진 은혜의 특권과 영광에 어울리게 경건한 사랑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아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영광스럽고 새로운 용도로 쓰임을 받는 자들인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전 상태를 무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훨씬 멋진 용도로 쓰이도록 깨끗해졌으므로 그러니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즉 그것은 모든 면에서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명은 미래를 내다 볼 때, 즉 예수님이 마침내 직접 나타나실 때 일어날 일에 대한 영광스러운 소망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행한 일을 공정히 심판하실 다가올 심판을 내다볼 때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18-21,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는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대 로마나 헬라에서 전쟁 포로나 노예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키는 것이 속량’(대속함)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노예들을 도로 사는 것은 금과 같은 썩어질 물건으로 되지만 우리들을 해방시킨 것은 바로 예수님의 존귀한 피로 인하여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창세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을 선지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베드로는 말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로부터 세상 전역에 퍼져 있는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들을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성령이 하늘에서 오셔서 그 복음이 그들의 삶에서 강력하게 역사하도록 하실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 일이 일어났으므로, 그 다음 단계는 이미 일어난 속량처럼 더욱 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를 ‘되사오서셔’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를 새로운 용도로 쓰기 시작하신 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듯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시고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현재 믿음과 희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는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속량 받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