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7. 15:06ㆍ베드로전,후서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과 소망에 이어 사랑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이웃들과 수평적인 면을 동시에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인간을 구속하시는 행위 가운데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형제에 대한 사랑은 눈으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갓난아기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나 이제 음식을 먹고 자라 가족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아기를 비유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태어난 다음 돌봄을 받으며 지내다 자라 어른이 되는 생명, 성장하는 아이가 다 그러듯이,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좋은 방식과 나쁜 방식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좋은 방식은 택하고 나쁜 방식은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방식이 뜨겁고 순전하고 진실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1:22-23,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딘어을 들으면 그저 단순히 ‘성경’이라 추정할 것입니다. 이 단어는 사실 자주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 우리가 아는 신약 성경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일부 단편들이 존재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경’은 옛 이스라엘의 성경인 ‘구약’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이상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말씀”은 메시아 예수에 대한 메시지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어 그분의 희생적 죽음과 그분에게서 나온 성령을 통해,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모든 민족 사람들이 이전 삶에서 해방하여 온전한 새 생명과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을 주려 하시려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는, 베드로가 이미 말했듯이, 옛 예언자들이 했던 말이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 곧 옛 성경의 성취로, 하나님이 그분을 통해 하신 일에 대한 메시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거듭나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초기 기독교의 다른 자료들은 물론 앞 다락에 나오는 1절을 보건대,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듯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행 2장).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거나, 그 메시지에 동의하거나 거부하기로 결심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에는, 그 자체로도 단순한 ‘말들’을 넘어서는 어떤 놀라운 에너지, 능력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적어도 청중 일부에게 마치 수혈을 받은 듯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붙잡혔고, 그 말씀으로 인해 변화되었으며 그 말씀으로 씻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는 본문에서 이사야서 40:6-8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인용구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장기간 걸쳐 나라가 멸망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위로에 가득 찬 약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결국 시드는 한낮 풀과 꽃을 싹 뛰우는 평범한 씨와 중요한 다른 씨를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씨 뿌리는 사람의 이미지 특히 예수님이 중요한 비유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에서 유명했다고 합니다. 어째든 그것은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들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고 회복하실지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처럼 밖에 나가 다시 한번 그분의 밭에 씨를 뿌리실 것이고, 그분의 참 백성인 진짜 이스라엘은 싹이 나서 훌륭한 작물로 자라나 추수를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이런 이미지를 가져온 것입니다.
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앞 22절에서는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말했다면 본문은 나쁜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속이고 증오하고 적개심을 갖고 험담을 하는 방식이란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방식대로 행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순전하고 신령한 젖“, 즉 ’영적인 젖‘, 진짜 젖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과의 진실하고 강력하고 생생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을 통해 주님의 은혜로우심을 맛보고, 갓난 아이가 엄마의 젖의 그 맛을 계속 찾고 갈망하는 것처럼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어린 아기가 엄마 젖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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