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1. 21:15ㆍ사도행전강해
빌립보 시는 바울과 실라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마게도냐로 와서 들어간 첫 도시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의 복음 증거는 철저하게 바울이나 실라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기들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빌리보로 갔지만 그 손짓하는 남자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어떤 옷감 장사하는 여자가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할례까지 시켜서 갔지만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고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귀신 들려서 점을 치는 귀신 들린 여자 종 이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시에 들어갔을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주요 도시로 들어가 그냥 아무렇게나 거리에서 무턱대고 설교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금세 당국이 잡으로 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빌립보에서는 유대인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회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열 명이 넘어야 회당을 세울 수가 있었고 열 명이 안 되면 기도처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기도처라도 찾던 중에 강가에 여인들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 가운데서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 장사 루디아가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빌립보 성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로마 속국에서 관복으로 많이 사용하는 자주색 옷감을 파는 장수였습니다. 당시 조개에서 얻은 자주색 염료로 물들인 옷감은 매우 아름답고 값이 비쌌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루디아는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번잡스러운 이교의 의식과 신앙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하고 매력적이고 지혜로운 것이 유대교에 있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루디아의 회심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줍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즉, 동의하고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찾으러 오실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기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루디아처럼 이런 기도를 한 사람들 때문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그 환상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한 말씀에 마음의 창을 열게 되었고 그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그 마음으로 주님의 메시지가 들어와서 그와 그 집안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루디아는 바울일행을 그의 집에 머물도록 강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생각지도 않은 협력자를 얻음으로 해서 복음 전파에 한층 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항상 말하고 있듯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항상 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점을 치는 일’이 흔했고,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신전 같은 곳에 가서 아폴론의 여사제에 결혼에서부터 전쟁까지 모든 것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돈 버는 수단으로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종은 실제로 예언의 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로 이용하여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지라”로 보아서는 주인이 여러 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의 관습으로는 점치는 종이 점에 용하게 잘 맞으면 몸값이 아주 비싸게 나갔기 때문에 종에게 여러 명이 투자해서 공동으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그러나 빌립보 사람들은 이 여자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즉,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의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우스가 아니면 그 지역 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신으로 여겨지는 어떤 신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이해도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대로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로 들어가는 것, 부패와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16:30-31에서 보겠지만 ‘건강’이나 ‘번영’ 혹은 어떤 재난에서의 ‘구출’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노예처럼 사는 그 젊은 여자가 매우 불쌍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돌아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여자에게서 예언의 영이 떠나라고 명령하고 그것이 그 여자에게서 떠났습니다(18절). 그러자 그 여자로 인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는 주인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종교적, 정치적인 편견을 가진 세력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들은 바울 일행을 관리들에게 끌고 갑니다. 16: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였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시였습니다. 이 마을은 로마와 터키를 오갈 때 이용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빌립보는 식민지로서 로마의 문화와 규범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부류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의 관습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로마를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중범죄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는 재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옷이 벗겨지고 채찍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돈과 종교와 정치가 결합하여 어떻게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전쟁은 기존의 가치관과 성령의 전쟁인 것입니다. 즉, 우리들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성령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권세와 하나님 나라와이 싸움인 것입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아서 영적 전쟁을 치르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을 했지만 우리들은 그 세상의 종말이 2,000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약 없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영적 전쟁을 한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고 우리들은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지금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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