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1. 1:1-8.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025. 2. 14. 17:09요한계시록강해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책입니다. 또한 인간의 세속 역사와 지금 존재하는 하늘과 땅의 끝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종말의 책이지만 이후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시작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서는 성경 중에서 가장 해석이 난해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약속되고 있지만(1:3),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소홀히 취급됨으로써 스스로 화를 입거나 다른 사람을 미혹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서의 저자는 자신을 네 번씩이나 요한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 섬(1:9)에 유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에베소에 있으면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본서의 기록 연대는 로마제국이 가이사황제를 주로 경배하도록 강요하면서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될 무렵인 9595년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계시라는 개념과 책 이름 계시록,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 영역(하늘)과 우리의 영역()이 결국 거대한 심천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지 않다는 유대교의 신앙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이 두 영역은 온갖 방법으로 서로 만나고 어루어지고 스며든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다고 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던 장소는 단연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유대인들은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이야기의 양쪽 모두를 보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술 방식은 그 당시 유대인 세계에서 잘 알려진 방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안고 분투하던 거룩한 기도의 사람들이 본 환상과 계시에 응답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하늘과 땅이 한 인격 안에서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운동이 성장하며 탄력이 더해지자 추가 질문들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 지중해 세계 주변에 흩어진 작은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보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박해를 받도록 허용하시는가? 당시 급속하게 성장하던 종교였던 소위 로마 황제 카이사르 숭배에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하는가? 저항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들이 계속 생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이 근거지로 삼았다고 보이는 고대 터키에는 몇 개의 기독교 그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은 가난해서 서로의 가정에서 만났을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은 여러 도시에 황제와 그의 가문을 위해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신전을 건축해 자신들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로마에 과시하는 데 열을 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상의 군주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을 뒤따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가?

 계시록은 이 질문들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쓰였고, 그 중심에 새로운 메시아 예수의 계시가 있습니다(1). 머리와 마음속에 온통 이스라엘의 성경으로 가득했던 요한은 기도하던 중 한 어느 순간 예수님이 천사를 통해 직접 계시했다는 것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먼저 본서는 네 단계의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서 하나님은 어떤 내용을 예수님께 직접 계시했고 그것을 예수님이 한 천사를 거치고 다시 한 종 요한을 통해 자기 종들에게 전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예수님-천사-요한-교회들, 이 흐름은 계시록이 전개되면서 흐려지지만, 기본 틀은 계속 남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은 증언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본문에 나오는 증언증거를 가리키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합니다. 이 단어들은 대개 하나님이 거대한 하늘 법정을 궁극적으로 관활하신다는 의미를 담는다고 합니다. 그 법정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내놓은 증언이 궁극적 심판과 평결의 열쇠란 것입니다. 또한 이 단어들은 보통 헬라어 원어 순교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증거를 내놓은 사람들은 자신의 한 말로 인해 고난받으라는, 심지어 죽으라는 부름을 받을 수도 있다는 심오한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예언이라고 3절에서 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여러 예언자처럼, 요한은 이전 시대의 성경 전승을 자유롭게 인용합니다. 이 전승은 그 자체로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계시였던 것입니다 이 전승은 반복해서 새로운 형태로 참신하게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은 4절과 8절에서 말한,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의 중심인물 예수님 자신에게서, 지금 계시고 전에 계셨고 앞으로 오실아버지 하나님에게서 궁극적으로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서문에서도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또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자신이 믿는 바를 상당히 많이 드러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 시작과 끝이시다(8). 다른 주(lords)와 통치자가 비슷한 호칭을 주장하겠지만 이런 호칭을 소유하신 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밖에 없다고 요한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신 분이다. 자기 백성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루신 그들의 자유,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목적, 이 모든 것이 6절에서 짧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곧 돌아와서 이 임무를 완수하시고,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자신의 통치권을 새우실 분이라고 7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1세기에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 또는 이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이 정말로 오셔서 마침내 만물을 바로잡으실 거라는 가정 위에서만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