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12:17ㆍ요한계시록강해
오늘 본문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환상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큰 음성을 들은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1세기의 공상이 만들어 낸 동떨어진 인물일 뿐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부 열성적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와 친밀한 사랑의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도 할 것입니다. 요한은 후자에 대한 생각에 동의를 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쉬운 인물, 단순히 우리에게 내적 행복감만 주는 분이라고 상상하지 말라고 경고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우리는 그분을 끌어안지 못하고 마치 죽은 것처럼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요한복음을 통해 요한의 서술 방식에 대해 또 독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는 방식에 대해 배웠습니다. 꿈이나 환상을 설명하는 어떤 사람처럼, 그의 말은 논리가 아니라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상상해 보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늘과 땅 사이의 커튼이 갑자기 올라가고,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면 어떤 모습이겠는가? 그에 대한 증언이 오늘 내용입니다.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은 터키 남서부 해변에서 약 56키로미터 떨어진 밧모라는 섬에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거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두려움 없는 가르침에 대한 처벌로, 또 더 이상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도록 그의 사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당국자들이 그를 거기에 유배시켰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배는 그에게 기도하고 묵상하고 이제 가장 큰 파괴력을 지닌 하나님의 능력과 환상을 받을 시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자신을 “예수의 환난과 나아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라고 소개합니다. 어떤 주권적 통치를 뜻하는 ‘나라’가 고난이나 참아내는 인내와 같이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책 전체의 논점 중 하나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친히 승리하셨고, 그분의 백성들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1:10-11,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아,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본절에서 말하는 “주의 날” 은 일주일의 첫 날인 주일을 말하는데, “주님께 속한” 이런 뜻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안식일 대신 “안식일 첫 날”(막 16:2, 행 20:7), ”매주일 첫 날“(고전 16:2)을 지켰는데, 이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었고 합니다. 이날에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서신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 기록된 것임을 밝힘으로써 신적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소아시아 서남부 일부 지역에 있는 일곱 도시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하지만 일곱은 완전수고, 따라서 본문에서 열거된 교회들은 모든 지역과 모든 시대에 있는 세상의 모든 교회를 대변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교회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2-16절의 예수님에 대한 환성은 우리에게 요한의 저술 방식의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기한 꿈을 전달하는 어떤 사람처럼, 요한이 말하는 내용은 대체로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예수님 환상은 가장 유명한 성경의 환상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 7장의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이 정점에 다다르면서 ”옛적부터 계신 분“은 하늘에서 자기 자리에 앉고, ”인자 같은“ 이가 그분 앞에 나타나 그분과 함께 보좌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의 환상에서 이 두 그림이 융합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를 직접 바라보는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은 그분의 입에서 나와 눈에 보이는 칼로 변하는데(16절), 이는 오시는 왕(사 11:4)과 고난 받는 종(사 49:2)에 관한 이사야 예언의 메아리인 것입니다. 이 책의 엄청난 분량은 한 편에서는 개념의 가시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경 구절의 실현과 관련이 있습니다.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본절에서 요한은 영광에 빛나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당연할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들은(롬 3:23)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며 죽을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했던 것입니다(삿 13:22).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적이 있고“, 이제 ””영원 무궁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네가 더 이상 걱정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살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이 바로 그 믿음과 그 용기인 것입니다.
1:19-20,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과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있게 될 사건, 그 절차으로서의 재림 사건 자체, 그리고 재림에 뒤이어 있게 될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성도들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승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9절의 명령은 본서 전체의 내용 구성을 한 마디로 요약함으로써 본서의 해석을 위한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본서는 다니엘서나 에스겔서와 같은 다른 상징적인 성경들의 도움을 얻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하면서 원어가 지닌 참 뜻을 헤아리며 해석한다면 본서에 담긴 무궁무진한 하늘의 비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늘나라의 비밀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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