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8. 12:07ㆍ요한계시록강해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해 교회에 주시는 경고와 칭찬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가 첫 번째입니다. 이 서신들은 해당 교회에게, 또 그들을 통해 이미 그 지역에 있던 다른 여러 그리스도인 그룹에게 보내는 예리하고 통렬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때와 지금의 모든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편지는 모두 동일한 패턴을 따르는데, 1장에 제시된 예수님에 관한 묘사의 여러 특징을 가리키는 단서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잘해 온 일에 대해 교회를 칭찬하고 그 뒤에 잘하지 못한 일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 뒤 편지는 준엄한 경고와 약속으로 끝납니다. 즉 영께서 교회에게 말씀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기라’고 요청하고,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영광스러운 미래의 어떤 측면을 그들에게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만 두 번째 죽음을 피할 것으로 약속받았다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약속과 경고는 모든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초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1세기 에베소의 인구는 약 2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는 그 지방의 수도였고, 서부 터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활발한 교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에베소는 초기 기독교의 주요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고, 2세기 초까지 기독교 저술가들은 에베소를 기독교적 믿음과 삶, 증언의 훌륭한 본보기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몇백 년 동안 에베소는 탁월한 지위를 차지했고, 5세기의 중요한 교회 공의회 중 하나가 에베소에서 열렸습니다(431년). 또한 에베소에는 아르테미스, 로마 여신 디아나를 가리키는 로마시와 황제를 위해 그들의 정성을 다해 건축한 광대한 신전이 있다고 합니다. 즉 에베소 지역 내 황제의 권력이 가장 뚜렷한 중심지인 에베소의 교회에게 예수님이 자기 손에 일곱 별들을 붙잡고 계신 주권자이심을 상기시키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곳에는 활발한 교회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터키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슬람국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예수님은 요한을 통해 말씀을 전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러지 아니한 것을 아니라“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 인내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들을 드러내며,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면서 교회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열심히 일했고, 위협과 박해 아래서도 인내했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당도해 스스로 ‘사도’인 양 행세했을 때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정체를 간파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여행했던 것 같고,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의 환대를 요구하고 심지어 가르침을 경청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경고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고, 분명 그 사랑은 항상 단단히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랑’은 사람들이 행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사랑’이란 궁핍한 사람들, 특히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굶주린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하고 실제 도움을 주며 실천하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주요 표식이었다고 합니다.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다른 집단들을 결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반사하는 이런 종류의 ‘사랑’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최고 표현인 동시에 최고의 광고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런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예수님이 나무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다시 간직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경고하십니다.
2:6-7,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본절에 나오는 ”니골라 당“은 버가모에 보내는 편지에 다시 등장하는데 그들이 누구였는지 혹은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실천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신학자들은 노력했으나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니골라 당“에 대한 이 언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논지는 교회는 신기한 새 개념을 가르치거나 신기한 새 관행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개인과 단체를 늘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교회가 배워야 할 새로운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것들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깊은 기도와 성령 충만한 성경 연구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해주신다고 합니다. 왜 이 서신에서는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을까? 이 책의 모든 언급을 하나로 모아 보면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신생 교회가 맞닥뜨린 주된 도전은 이교도 박해와 위협일 것입니다. 사실 이 일곱 편지들은 주님께서 이 교회들을 앞으로 올 더 심각한 일에 준비시키는 일에 준비시키는 일환으로 작성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반격을 가하지 말고 인내하는 고난을 통해 친히 승리를 얻으신 주님을 따름으로써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고난을 인애로서 잘 이겨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한계시록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6. 2:18-29. "두아디라 교회" (0) | 2025.02.21 |
---|---|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5. 2:12-17. "버가모 교회" (0) | 2025.02.20 |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4. 2:8-11. "서머나 교회" (1) | 2025.02.19 |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2. 1:9-20. "예수의 증언" (1) | 2025.02.17 |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1. 1:1-8.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0) | 2025.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