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0. 12:16ㆍ요한계시록강해
오늘 본문은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세상의 군주들과 그 신민들에게 그들의 왕관은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어쨌거나 빌려 온 것임을 일깨워주면서 실제적인 주권, 즉 ’니라‘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의 소유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지금 전달하는 환상은 우주적이고 전 지구적인 것이고,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세우신 ’나라‘는 단순히 이런저런 민족을 통치하는 나라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 나라‘를 하나의 실체로 보고 그것을 합법적 영토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시는 그분의 보편적 통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끔찍한 혼란과 문제들을 통해, 어린양을 따라 고난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할 백성을 예수님을 통해 세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난을 통해 세상은 회개와 믿음에 이르게 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본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다스릴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온통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단지 ’하늘의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해 왔습니다. 이때 그 의미는 하나님이 ’하늘‘이라고 불리는 곳의 책임을 맡으셨고, 인생의 주된 목적은 ’우리가 죽을 때 하늘로 간다‘는 뜻에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또 대부분의 교회에게 계시록이 말 그대로 닫힌 책이었던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계시록이 이런 통속적 견해와 강력하게 충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하늘‘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시고, 그분의 전체 목적은 온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되찾아. 인간의 반역으로 인한 궤도를 벗어나기 이전에 하나님이 항상 의도하셨던 그런 곳이 되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네 복음서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이유는, 마태가 ’하늘 나라‘라는 어구를 사용할 때 독자들은 ’하늘에 가는 것‘을 마음에 떠올리며, 이것이 바로 마태가, 따라서 예수님이 얘기하시는 내용이라고 손쉽게 가정했다는데 부분적 요인이 있다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의 개인적 영성이나 도피주의자의 미래적 ’구원‘과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이 책임을 맡으셨고 그분의 통치 방식은 ’메시아‘ 어린양에 의해 세워졌다는 소식으로 세상 권력에 맞서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은 초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관한 중요한 핵심 예언이라고 여겼던 시편의 성취입니다. 시편 2편은 나라들이 하나님께 맞서 격동하고, 하나님은 그에 대응해 거룩한 시온산에 왕을 세우신다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세상 나라를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유업‘은 단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 중동의 작은 조각 땅만이 아니라. 온 세상과 그 모든 나라가 될 것입니다. 나라들이 격동하여 싸울 때,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 이 그들을 전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최고의 처신은 복종하는 것, 화친을 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환상은 이 일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6-17,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본문과 1:4 같은 본문의 차이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1:4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지금 계시고 전에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미래가 이미 현재 안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오심“이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땅의 파괴자들을 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8-19,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땅의 파괴자들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궁극적 의미란 것입니다. 흔히 심판은 사람이 정말 즐기고 싶은 것을 좌절시키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창조 세계를 망가뜨리는 모든 것에 대한 창조주의 심판인 것입니다. 4장과 5장의 환상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목적은 아름다운 창조 세계가 반물질, 반창조, 반생명 세력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제 그 반생명 세력, 즉 죽음이 죽을 차례란 것입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언약궤“가 새 성전에 회복될 것인지에 관한 숱한 추론이 유대교 분파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약궤의 등장은 하나님이 마침내 자신의 안약적 약속에 충실하셨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일을 이제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권을 잡고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통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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