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4. 17:44ㆍ요한일서,이서, 삼서,유다서강해
본서는 요한의 세 번째 편지로서 자신이 전도하여 개종시킨 것으로 추측되는 가이오에게 보낸 개인 서신입니다. 비록 분량이 적지만 초대 교회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본 서신이 기록되었을 즈음 믿음과 통일성이 무너지는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요일 2:18,19). 공동체 안에서 이단적인 사상이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요이 7) 분파주의가 생겨나고 성도의 교제를 거부하는 일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제 요한은 요한 일, 이서와 같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대비시킴으로써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서는 요한 일, 이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고 가이오와 소아시아 지역에 사는 다른 성도들에게 보내졌던 것 같습니다.
1~3절,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내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한의 첫 번째 편지는 거의 모든 교회에 보냈고, 즉 터키의 서쪽 지역에 있는 상당수 교회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특정 교회에 써 보낸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교회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그는 분명 그 교회의 구성원 몇몇을 만났고, 그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 것”을 기뻐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이제 이 세 번째 편지는 가이오라 불리는 특정 교회 지도자에게 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한 다른 것은 전혀 모릅니다. 그가 어느 교회에 속했는지, 그가 이 짧은 편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에게 하는 말에서 꼭 필요한 몇 가지는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서신처럼 요한은 누군가가 ’’ 진리 안에서 걷고 ‘‘ 있음을 알고 기뻐합니다. 그것은 복음 진리를 묵상하고 삶으로 드러내며 진실하게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단지 올바른 교리와 겉으로 드러나는 적절한 행동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동료 신자들에 대한 사랑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보기에는 그 사랑은, 복음의 진리를 통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기 백성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제대로 파악했다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사랑에서 동료 신자들을 환대하는 행동이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4~6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그 당시 순회 선교사들이든 일상사로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그 지역의 신자들 모임에 많이 의존했을 것입니다. 그런 관행이 아주 흔했기 때문에, 이 서신이 기록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여행자들을 위한 규율을 정리한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는 초기 기독교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들‘은 최대 이틀을 묵을 수 있었고,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최대 사흘을 묵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너그러운 사랑이 주인들이 지킬 규율이었다면, 손님들에게는 그 사랑을 오용하지 않도록 분명한 제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와 디모데전서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서로 돌보는 의무가 게으른 무위도식자를 초대하는 것이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매우 관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이오를 찾아갔던 요한의 교회 사람들은 극찬을 한 모양입니다. 이 서신을 쓴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인 듯 합니다. 요한은 요한일서 3:18에서 말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랑을 가이오가 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과 진실로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마음과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삶 전체로, 특히 돈과 집을 내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오가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7~8절,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순회 선교사들은 예수님의 위대하고 강력한 이름을 위해 나갔습니다. 이는 곧 그들을 위험에 빠트렸고, 부분적으로 그 때문에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갈 때의 에스라처럼(스 8:21-23),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했고,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환대를 통해 공급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서신에서 늘 그렇듯이, 진리를 단순히 어떤 사실이나 특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공동체와 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요 힘인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고 역동적인 것입니다. 그릇되고 사악한 세상이 다시 한 번 창조주 하나님이 명예를 얻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곳으로 변화하도록, 우리는 진리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사역에서 이러한 협력은, 식사 한 끼와 하룻밤 잠자리와 같은 것들이 실제적인 것들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여행을 제외하면, 우리는 2세대, 3세대 그리스도인 지도자, 교사, 선교사들의 이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증거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며, 자주 이리저리 옮겨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예수를 따르던 이들을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들로만 알았던 그들의 세상과, 기독교 신앙의 실천을 금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나라들에서도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가 이토록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진리를 표현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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