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7. 16:04ㆍ요한일서,이서, 삼서,유다서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유다가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멸망당한 과거의 불경건한 거짓 선생들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현재 거짓 선생들에게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본문을 읽으면서 유다가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 강박적인 것은 아닌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귀로 묘사한 것은 아닌가? 그들이 정말 그렇게 악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우리가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숨이 멎는 듯한 속도로 온갖 불쾌한 성경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안에서 현재의 위협을 생각하도록 유다가 그리는 큰 그림인 것입니다. 유다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라!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놀라지 말라!” 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7절,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본문은 하나님이 그분의 길을 저버렸다고 여기신 이들을 심판하시어 유죄 판결을 내리실 수 있고 내리신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출애굽 때 애굽에서 나온 이들 일부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아니라 이후 유대 전통에서 나온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일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다양한 계급과 의무에 반항한 천사들에게도 일어났다고 유다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 창세기에 더 잘 알려진 이야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뜻밖의 방문객들을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려 했던 모습은(창 19장) 분명 그들의 평소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임한 끔찍한 처벌이 다른 역겨운 죄인들에게 닥칠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유다는 이 모든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락(8~13절)의 요지는, 그가 지금 염려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그저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앞의 4절에서 그들의 핵심적 악행들을 언급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에 대한 구실로 취급하고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유다는 본문에서 세 가지 목록을 제시하는데, 첫째는 앞의 둘 중 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몸을 더렵혔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존재들(하나님 권위를 부여받은 천사들)을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혐의는 우리와는 멀어 보일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천사들을 무시하거나, 귀엽고 막연히 종교적이고 기분 좋은 상징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유다에게 천사들은 실재하는 영향력 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경 스가랴 3장에 나오지만 다양한 곳에서 진전된 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 이야기에서 천사장 미가엘은 사탄과 얼굴을 마주하고 논쟁하면서 그에게 주님의 꾸짖음을 떠올려 준다는 것입니다. 미가엘은 사탄을 직접 저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 문제를 주께 넘겨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저주한다고 유다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두 혐의는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권위를 거부하면, 교회에서든 더 넓은 세상에서든 인간의 권위 역시 쉽게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렇게 권위를 거부할 때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은, 어떤 행동을 하든, 특히 성과 관련하여 규제를 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유다는 성경에 나오는 악한자들을 나열합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을 보며 떠올린 이들로 살인자 가인, 거짓 예언자 발람, 모세에게 반역한 지도자 고라입니다. 사실 반역이 문제의 핵심에 가깝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정당한 권위 구조를 전복하거나 무시하는 데, 그 결과는 도덕적 혼란과 오염입니다. 그 모습은 더 당황스러운 비유 목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물기 없는 구름, 열매 없는 나무, 거친 물결, 방황하는 별들입니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약속은 하지만 지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름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지 않고, 풍랑이 거칠어 바다에 안전한 항로가 없고, 하늘의 별들에 규칙적 운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교사들은 흥미진진하고, 다르고, 해방을 가져다주는 생활 방식을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수치와 어둠과 혼란뿐이라고 유다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6절,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을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되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다는 본문에서 당시 잘 알려진 유대 문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문서는 고대의 인물 에녹의 입으로, 여기 나오는 예언을 포함한 여러 예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유다는 스가라서를 상기시키는데, 이번에는 주님이 거룩한 이들과 함께 오신다는 것입니다(스 14:5). 특히 경건하지 못한 이들에게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그 교사들은 그저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오만과 탐욕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옹호하며, 또 다른 쾌락을 추구하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권위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성적 문란을 조장하는 거짓 교사들은 1세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 그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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