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30. 16:33ㆍ창세기강해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소명과 가나안 이주에 대한 내용입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11장의 전반부는 천지 창조, 첫 사람 아담의 선악과 범죄, 노아 대홍수, 바벨탑 사건 등 전인류의 근본적 운명을 결정지은 4대 사건을 중심으로 전인류의 초기 역사, 즉 원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50장의 후반부는 아브라함을 포함한 이삭, 야곱, 요셉 등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직계 조상들인 4인의 족장들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의 애굽 정착으로 끝나는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마침내 선민으로 온전히 태동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출애굽기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넓게는 이같은 12~50장 사이의 창세기 후반부의 첫 문단이며 좁게는 12:1~25:18 사이에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행적 시작입니다. 또한 본문은 유명한 아브라함의 소명과 가나안 이주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조상으로 소명을 주시며 함께 주신 놀라운 축복의 언약들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놀라운 비전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서 오직 믿음의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도전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본문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소명을 받고 역사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는 본문은 “여호와께서” 란 말로 그 서두를 열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역사의 전면에서 활동하는 자는 인간 아브라함이지만 그 배후에는 여호와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척‘이란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당시 하란에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24:10) 아마 나홀 가족은 데라 일행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후(11:21) 바로 뒤이어 하란으로 이주하여 계속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족의 중요성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따라서 친족의 많은 것은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고향‘이라는 넓은 영역에서 ’친척‘이라는 중간 영역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집‘ 즉 가장 작은 영역으로,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소명의 내용은 당시 친척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고대 유목민에게 있어서 따르기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니란 것을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옛 것, 즉 자신이 인간적으로 의지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푸실 복이 본문에서 모두 7가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축복으로서 그가 큰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축복인 ’복을 주겠다‘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번 복을 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복을 주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축복은 명예에 대한 보장입니다. 즉 ’네 이름을 창대케‘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축복은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째 축복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린다’입니다. 그리고 여섯 째 축복은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쩨와 여섯 째 두 축복은 양자 모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당신의 종 아브라함에 대한 태도 여부에 따라 대우하시겠다는 것은 결국 이제 아브라함이 대외적으로도 하나님과 완전 한 편이 된 자로서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도 존경과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선언하는 것인 동시에 그들도 복 받을 길을 열어준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축복인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침내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 전체가 복을 얻는 결정적 계기까지 마련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온 땅에 흩어져야먄 했던 이 땅의 모든 저주받은 족속들이(10:5) 아브라함으로 밀미암아 다시 복을 누리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라고 성경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너로 말미암아’는 아브라함 개인 그 자신을 가리킨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해당하는 원어 ‘베카’는 ‘너로 인하여’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또한 ‘네 안에’ 란 뜻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아브라함 자신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날 자, 즉 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임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완성을 상징하는 수인 7가지 축복이 주어졌다는 것은 이 축복의 신성함과 완전함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명을 주실 때 축복도 함께 주셨다는 것을 성경 저자가 밝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12:4-5,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본문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내용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 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결단을 내림에 있어 인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 에 따라서만 행동했다고 성경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굳이 아브라함의 나이를 밝히는 것은 이 사건이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자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나이가 밝혀지고 있는 사건들은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때(16:16), 이삭이 태어나기 일 년 전 할례를 행할 때(17:1,24) 이삭이 태어날 때(21:5), 그리고 그가 죽을 때입니다(25:7). 이는 모두 약속의 후사가 될 이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본문이 밝히는 75세의 나이와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본문이 보여 주는 나이는 믿음을 가진 자의 인내가 약속의 성취를 위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당시 이미 많은 재산을 가졌으며 상당한 규모를 지닌 유목민 집단의 지도자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했다는 것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러나 실상 아브라함 일행은 유브라데스강 상류를 건너고 수리아 다메섹을 지나 헬몬 산 남쪽을 도는 장장 700km가 훨씬 넘는 먼 거리를 여행하며 가나안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이 먼 거리를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의 힘으로 어려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서 11:8을 통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6-9,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본문에 나오는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의 이름이었다기보다는 후대에 이곳에 성읍을 세운 히위 족속의 족장 세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인 듯합니다(34:2).(34:2).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40km 지점으로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물이 비교적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레 상수리나무“에서 ‘모레’의 뜻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정확한 뜻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상수리나무’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나무였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그 땅에 가나안 사람이 있었다고 밝힌 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원주민이 있었던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그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큰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매우 나쁜 상황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 저자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다른 족속이 거주하던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나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이를 완수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행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굳게 믿으며 또한 감사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정복자가 땅에 군기를 꽂아 자신의 영토임을 드러내듯이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땅임을 널리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자신의 후손이 그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란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 그 자체만을 철저히 신뢰하고 먼저 제단을 쌓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방신이 산재해 있던 가나안 땅에서 단을 쌓은 뒤 결코 이방신의 이름이 아니라 유일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자신이 여호와께 속한 사람임을 분명히 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말하는 ‘남방’의 원어 ‘네게브’는 ‘거치른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남쪽에 있는 사막 지역을 일컫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가나안 지역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로 약속된 땅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거친 남방으로 이주를 한 이유는 가나안 지역에 이미 정착한 원주민들의 경계심 때문이었던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의 일행의 고된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된 삶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인 것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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