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26. 11:1-10. "장자의 재앙"

2022. 1. 21. 12:05출애굽기강해

 

  드디어 열 가지 재앙의 끝판왕인 장자의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애굽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애굽의 국민 들 중에는 바로와 같은 왕족과 귀족들과 평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노예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국민 들 중에서도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몸종의 장자까지 다 죽인다고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세상 권세와 하나님 나라와의 대립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분배되는 곳이라면서 과부와 아이들과 나그네들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골고루 분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열 가지 재앙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이집트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출애굽기는 우리가 영적인 해석을 해야만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목적을 위하여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로가 집필한 '고난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을 때 완전하게 되었다면("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믿음에 이른 그리스도인이 완전해지려면 예수님처럼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고난 없이 순종을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젖을 떼야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일로부터, 세상에 의해 쓰라림을 당하는 일로부터 젖을 떼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을 위한 배움이 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난의 학교는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조용한 수업입니다. 이 고난의 학교에는 단 한 가지 순종만 배운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고난 없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고난만이 영원을 위해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은 믿음 안에 있으며 믿음은 순종 안에 있고 순종은 고난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케에르케고르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고난의 학교에서 순종을 배우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참 무섭고 어려운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 좋은데 만약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사람은 더 추락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 없이 나는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또한 자기의 '의'가 강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그 고난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고난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 들어가 봅시다.

 11: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문맥상 아홉 번째 재앙으로 인한 바로의 호출 이전에, 모세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전해받은 메시지입니다. '한 가지 재앙'은 장자의 죽음에 대한 재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은 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3:21-22에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은 나약한 패배자들처럼 도피하듯 애굽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긴 승리자처럼 떳떳하게 전리품을 취하여 애굽을 당당하게 떠날 것이란 의미입니다.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란 말씀에서 '은혜'란 상대를 존경하고 그의 필요를 따라 극진히 대접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굽인의 환대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15:14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지금까지의 재앙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와 아론이 대신 집행한 것이었으나, 이제 마지막 재앙만은 하나님께서 친히 실행하실 것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는 마지막 재앙의 심각성과 그 재앙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완전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임재는 의인에게는 구원, 악인에게는 멸망이라는 이중성을 내포합니다(창 6:17-19)

 11: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리" 처음난 것이 모두 죽는다는 것은 곧 애굽의 종교와 경제와 문화 전반에 걸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애굽인이 신뢰하며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것들에 철퇴를 가하심으로써 그들의 삶 자체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인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현재 하나님에 대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개도 짖을 일이 없을 만큼 이스라엘 각 집에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고요한 평온만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는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보호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요 16:33).

 1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본문은 지금까지 전개된 출애굽 전까지의 모든 상황을 개괄적으로 요약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7장 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모세와 바로 사이의 협상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아울러 마지막 장자 재앙의 불가피성을 암시해주는 말입니다.

 고난은 순종을 배우는 학교라고 했습니다, 지금 고난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순종을 배우는 학생인 것입니다. 고난은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모든 사람들에게 옵니다. 다만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을 순종으로 승화시켜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고난, 육체적인 고난, 정신적인 고난 이 모든 고난을 망라하는 것이 바로 영적 전쟁일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영적 전쟁을 한다는 것이 매일매일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실까?라고

 이 시간 나는 매일매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