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6. 21:34ㆍ고린도전서강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을 합니다. 바울은 이 예언이 자기 시대에 성취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이라는 말에 그가 담은 의미의 일면을 우리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한 창조적 사고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을 말하고, 참신한 성경 해석을 제시하고,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통찰을 교회의 삶에 적용할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관습에 얽매인 유대인들과의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4: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돼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돼라"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스스로 '신령한 자'(3:1-3)라고 자처하면서 특히 방언 은사 받은 것을 어린아이들처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에는 어른처럼 발달해 있었고 지혜에는 어린아이처럼 부족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어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본문은 이사야서 21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앗수르군을 보내어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이라"(사 28:11)는 것입니다. 그들은 앗수르 군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이사야의 예언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유치한 말이라고 거절하면서 여전히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이고 예언은 믿는 자들의 표적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방언이나 예언이 나타내는 성격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그 작용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즉 방언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기주장을 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며 반면에 예언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가정에 들어와 방언으로 말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그들은 반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는 사람들이 황홀경에 빠져서 이상한 말을 내뱉는 여러 이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릴 것이라고 바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의 의미를 또렷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방언은 공중 예배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14: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바울은 예언이 사람들을 믿음으로 엮는 사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부인'이 강력한 말씀, 설교, 권면, 특별히 주어진 지혜 등을 듣고, 그것에 매료되었다고 느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그들의 속 깊은 자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강한 빛을 비추어, 자신의 부족함과 죄와 심판을 의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공중 예배에서 통역되거나 해석되지 않는 방언 사용을 반대하고, 마음과 영은 물론이고 이성으로도 받아들여지는 강력한 말씀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성숙하라는 바울의 호소는 방언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의 실마리를 던져 줍니다. 즉 그들은 기독교 체험 면에서 어린아이 단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옹알이에서 벗어나 또렷하고 지혜롭게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숙이란 무엇일까? 바울은 사적 기도 중에는 계속 방언의 은사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고, 또한 방언을 미성숙의 표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18절). 성숙이란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은사들을 적절한 곳에서 사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현재 우리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끔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적절하게 사용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슨 은사를 주었는지를 알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이 이 시대에서 우리들이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에서 그것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내어서 그 말씀을 우리들의 삶에서 적용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거듭남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 시간에 묵상을 해봅시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대로 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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