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7. 21:34ㆍ고린도전서강해
14장 전체의 주제를 본문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공중 예배에서 말하고 침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무질서나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에서 이루아졌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은 예배 모임이 혼돈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핵심 문제는 단지 공중 예배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 것인가? 가 아니라. 고압적 자세로 으스대는 그리스도인들이 즉흥적 예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은사와 재능을 과시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막을 것인가입니다.
특히 바울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은사의 발휘와 관련하여 구체적 지시를 내립니다. 이는 모든 일이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요한 원리에 입각해서입니다.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본문에서 초대 교회의 예배의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예배의 의식은 특별한 형식은 없었어도 대략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삶 가운데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바울은 말한 것은 무슨 내용인지 분명한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이 통역하는 자가 없이 회중 가운데서 사용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언은 교회에 혼란만 야기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방언은 예언과 함께 분명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으므로 회중들 앞에서 사용될 때는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32절은 방언과 같이 예언의 은사도 교회 질서에 유의하면서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언하는 사람 외의 나머지는 침묵하되, 분명 수동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예언된 말을 곰곰이 숙고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큰 소리로 다른 사람을 묵살하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음 사람에게 말할 것을 주시면, 먼저 말한 사람은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자신의 말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바울은 여러 가지 은사를 쉴 새 없이 제멋대로 발휘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즉흥성은 결코 영성의 보증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14:34-3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여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많은 논란이 있는 구절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필경사가 공중 예배를 오직 남성 리더십의 사안으로 고수하려고 애쓰던 필경사가 덧붙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몇몇 필사본에서는 이 구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11:2-16에서 여성들이 예배 중에 말한다고 전제합니다. 만약에 바울이 직접 이 구절을 썼다고 가정한다면 그 당시 교회는 회당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나뉘어 예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공중 예배가 당시 주요 공식 언어(헬라)로 진행되었다면, 지역 방언만 이해하는 상당수 여성들은 전하는 말씀을 다 파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따분해진 여성들이 수다를 떨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중앙 가로 벽 너머로 큰 소리로, 자기 남편에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이런 일은 공중 예배의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바울이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14: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고린도 교인들은 마치 자신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고 성령의 은사가 풍성히 임하였으며 자신들만이 모든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처럼 자만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그들의 무지와 교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37-40절은 앞부분에 대한 결론일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에 대한 모든 논의(11:2-14:36)의 결론입니다. 자신이 예언의 은사나 영적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주님의 명령임을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의 사역이 소멸되기를 바라지 않고, 도리어 권장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모든 일이 적절하고 조화롭게, 또한 바람직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숙은 그 상황에 맞게끔 처신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적 성숙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에 덕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많은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해도 만약에 공동체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면 그 영적은사가 어디서 왔는지를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당들도 방언을 하고, 병 고침 은사가, 있고 예언의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은사들을 자신의 생사화복을 위하여 사용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은사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을 해봅시다. 나는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나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을 하는지 아니면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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