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 21:29ㆍ고린도전서강해
바울은 15장에서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가 모금 이야기를 하니 좀 이상하지만 이 편지가 무엇을 위하여 쓰였는지를 알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편지는 고린도 교회 안의 분파 문제와, 여러 가지 문제의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모금을 하는 목적 자체는 곧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모금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표지입니다. 또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모금은, 예수님이 메시아시요 세상의 참 주님이시라는 믿음에 이른 저 이방인들이. 그 과정에서 유대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자신들과 동일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표지입니다.
16:1, "성도를 위하여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갈라디아서 2:10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비참한 빈궁 속에 빠져 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도운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도우라고 권면합니다.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매주 첫날'은 '매 안식 후 첫날'에 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주일'에 해당합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주일과 안식일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지만 유대교인의 기독교 박해로 두 종교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4세기 초부터 기독교는 주일을 정규적인 교회의 집회일로 정했습니다. 또한 본문은 성도와 교회가 헌금하고 구제하는 원칙 3가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헌금은 각 사람이 해야 한다. 그리고 헌금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일 때 한다. 또한 헌금은 수입에 따라 얼마를 떼어 놓아 두었다가 내야 한다고 바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6:3-4,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바울 자신이 헌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인정하는 사람이 가져가도록 한 것은 교회 재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의심을 사거나 사도 마음대로 썼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고후 8:20)
16:5-6,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바울의 원래 계획은 본서를 쓰고 있던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고린도로 갔다가 마게도냐 지방을 방문하고 난 후에 다시 고린도로 돌아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행 19:21). 하지만 바울은 이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를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사건을 전해 듣고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바울의 의도를 모르고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 고린도후서에서 변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로마서를 집필을 했습니다.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가려는 또다른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잠깐 거쳐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능한 일정 기간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고집하지 않고 그의 삶과 계획 가운데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8-9, "내가 오순절까지 예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바울이 에베소에서 오순절까지 머물러 있으려 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가지려 했기 때문입니다(행 14:27, 고후 2:12). 하지만 예기치 않게 발생한 데메드리오의 소동으로 바울은 급하게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행 20:1).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열렸는데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사도행전 19장의 내용으로 보아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이었고, 특히 아데미의 은감실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데메드리오가 주동하여 소요를 일으켰으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문이 열리는 곳에는 항상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본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비슷합니다. 다만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왜 그렇게나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는 가마리엘 문화생으로써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입니다. 근엄하고 도도하고 교만한 바리새인의 표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 성령의 역사함을 입고 난 후에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역사 속의 인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편지는 살아서 우리들의 삶에 간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함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 또한 우리들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함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 됩니다~ 연단은 유익하니까~
'고린도전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6. 16:15-24. "하나로 묶어 주는 사랑" (0) | 2022.03.10 |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5. 16:10-14. "디모데와 아볼로" (0) | 2022.03.07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3. 15:50-58. "신비와 승리" (0) | 2022.03.02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2. 15:35-49. "변화된 부활의 몸" (0) | 2022.02.28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1. 15:29-34. "현재 삶에 의미하는 부활" (0) | 2022.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