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7. 21:15ㆍ고린도전서강해
사역이란 미묘한 사안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사역에 능력 있게 사용하시려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인정하는 '타고난 지도자'와 다릅니다. 실은 '타고난 지도자'가 자기 성품 탓에 복음의 길에 방해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고린도에서 바울이 지적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디모데 파송은 바울의 전략적 노림수 중 하나로 보입니다.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힘을 힘쓰는 자임이라"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의 재무 담당 에라스도와 함께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 교회로 가서 바울의 방문을 준비하도록 보냈습니다(행 19:22). 디모데의 임무는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분쟁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헬라 철학의 영향이 만연되어 있었고 항구 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세상의 헛된 지혜가 팽배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그리스도의 참된 지혜, 곧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도리를 바르게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 비해 젊고 경험이 적은 목회자였습니다. 이에 고린도 교회의 오만한 궤변가와 논쟁적인 분파주의 자들이 젊은 디모데를 위협하거나 조롱하여 그가 임무를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 중에서도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아들처럼 자신과 동역한다고 말합니다. 이 당시 아들은 으레 아버지에게 도제 훈련을 받는 세계였습니다.
16: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바울이 디모데를 위하여 이처럼 고린도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이유는 바울 자신이 겪었던 고린도 교인들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바울이 이러한 권면을 고린도 교회 전체 성도들에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회중 가중데 몇몇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 그들이 디모데를 함부로 대할까 염려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모데를 환영하고 자기 능력껏 가르치고 교훈하도록 격려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삶 곳곳에 만연해 있던 우쭐대는 거만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면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고린도 교회에서 온 편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후임자 아볼로와는 대립하거나 그의 고린도 방문을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많이 권면한 것은 둘 사이에 대립하는 감정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불로를 언급하는 의도는 분파심에 물든 고린도인들이 이 두 지도자의 관계에 대해 갖고 있을지 모르는 많은 의혹을 완하 시키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의 표현 방식은 아볼로가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바울과 아볼로가 모두 주님의 인도라고 여긴 어떤 상황 때문에 못 간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 더불어 그들 사이에 경쟁심이 있다는 온갖 억측도 배제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초반부에 비판한 분파 경쟁의 허를 재차 찌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아볼로는 경쟁 관계가 아니니 분파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람으로 행하라"앞뒤에 있는 인사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간결하면서도 종합적인 마지막 권면입니다. 네개의 명령문은 군사령관이 경계 근무하는 병사에게 하는 말과 같은 것으로 네 가지 명령은 점점 강도가 세집니다. 경계병은 모든 위험에 대비해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구역을 알고 길을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위험이 닥칠 때 그에 맞설 용기가 필요합니다. 위험에 대처하려면, 온 힘을 다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여러 위험에 처해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이리저리 떠밀려 다닐 수는 없습니다. 다름 아닌 복음의 본질 때문에, 복음 안에 받아들여지고 부름 받은 사람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영적 건강과 복음의 지속적 사역을 위해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단계마다 그들은 이들 명령 하나하나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일에서 사랑으로 행하라"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예수님은 '사랑'이란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분쟁도 없고 미움도 없고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는 것이 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에 '사랑'이 흘러넘쳐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내면에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의 내면에는 '사랑'이 숨쉬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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