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0. 21:38ㆍ고린도전서강해
드디어 서신의 마지막 인사 부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 남부에 교회가 탄생한다는 짜릿한 흥분으로 시작했는데, 그 교회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문제점에 노출되어 바울은 바로 잡고자 이 서신을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권면과 인사를 합니다.
16:15-16,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면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스데바나의 회심은 바울이 아덴에 복음을 전했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행 17:34). 바울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봉사를 했느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스데바나 가족들이 보여주는 자발적인 순종을 본받아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하는 것은 평소에 고린도 교인들이 나이나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일을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17-18,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이들 세 사람은 고린도 교회의 편지를 바울에게 가져왔고, 바울이 심사숙고하며 답장을 쓰는 동안 바울 곁에 머물렀습니다, 바울에게 그들의 방문은 얼마 전에 떠난 고린도의 공기를 마신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바울은 모두 잃은 것은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자들의 마음이 아닐까? 바울은 이들 세 사람에게 특별한 애정과 감사를 느낄 것입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교회의 결속을 다지고 더 강하게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기 때문입니다.
16:19-20,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바울은 에베소 교회 이외에는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각 교회들을 대표해서 안부를 전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각 교회들을 세우고 그들과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이들 부부는 신악에서 6번이나 언급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들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추방했을 때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입니다(행 18:2). 그들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났고, 이제 에베소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들은 초기부터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인사를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복음의 손길이 미친 유일한 백성이 아님을 상기시키려 합니다. 그들은 더 큰 공동체의 일원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거룩한 입맞춤 같이 모든 구성원 사이의 화해와 애정, 상호 배려와 존중을 하라는 바울의 바램이 이 묻어납니다.
16:21-22,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바울은 어릴 때부터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는 기도와 명령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신실함에 대한 언약과 사랑의 결과물입니다. 성경은 언약을 언급할 때, 늘 언약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언급합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만사형통에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는 느낌으로 이 편지를 마무리 하려 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에는 걱정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의 핵심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철학적 성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값으로 지불하고 그들을 사신 주님께 사랑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위험이었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저주가 있다는 경고는 '마라나타'라는 언어 때문에 더욱 부각됩니다. 이 말은 실제 아람어입니다. 그 뜻은 "우리 주여 오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사용한 유서 깊은 기독교 기도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왕과 주님을 재림하시고(15:20-28). 죽음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원수를 무찌르심으로써 하나님이 만물의 주님이 되시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기도는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16:23-2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앞절에서 말한 싸늘한 사랑과 심판에 대한 경고가 은혜와 사랑이 중심 주제인 이 편지에서 바울의 최종 결론일 수는 없습니다. 은혜와 사랑은, 탈 많고 극성스럽고 뒤죽박죽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여전히 깊이 사랑하는 고린도 교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모든 필요를 적당히 채우는 수준 이상으로 넘치는 주님의 은혜,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품고 있는 사랑, 어떤 저항과 비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끝 인사로 마루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라나타'을 기도하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면 그 기도의 진실함이 느껴집니다. 초대 교인들은 곧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진 박해와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부활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라나타'를 항상 부르짖는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경이란 말씀을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수님의 재림이 오면 우리들은 부활하여 새 창조가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일원으로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는 과연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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