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6. 2:6-13. "하나님의 지혜"

2021. 10. 30. 11:44고린도전서강해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성인, 즉 어린아이들이 먹는 음식과 음료에서 벗어나 더 차원 높은 것의 것의 진가를 알고 음미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가르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6-7,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바울은 " 복음은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유대인에게는 거슬리는 것"(1:23)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정말 깊고 풍성하고 다각적인 지혜를 간직해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혜는 오직 그것을 음미할 수 있고 음미하려는 사람들, 영적 분별력을 갖출 만큼 충분히 성장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은 회심한 자들이 성숙하면 더 넓은 세상에서 그들이 소피스트와 철학자들에게 얻는 것과 비슷한 '지혜'를 그가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지혜는 '현시대'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는 '오는 시대'에 속한 것입니다. 이 '오는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지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소귀에 경읽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들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만 그 지혜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8, "이 지혜는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니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세계 역사는 두 시대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현시대'곧 인간의 반역과 죄, 절망, 죽음으로 점철된 역사의 시기가 있습니다. 더불어 '오는 시대'는 곧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어서, 자신에게 맞서는 모든 세력의 통치를 종식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핵심은 이것입니다. '오는 시대'가 이미 메시아 예수 안에서 현시대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결정적인 시대의 단절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이유로 현시대와 그 통치자들은 이 지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모를 꾸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책임이 있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로마에는, 지방 총독 빌라도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책임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치하의 유대교도 일조했습니다. 이 땅에 등장했던 최상의 종교와 최고의 권력이 한통 속이 되어 영광의 주님을 처형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 사회가 적절한 지혜와 정당한 정부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늘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정부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패하고 거만해져서, 참된 정의와 지혜와 진리 대신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서 벌어진 일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마도 십자가 사건은 통치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말성꾼을 또 하나 제거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 리르고 있는지 깨달았다면, 그들은 그런 일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존경해서 죽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행동이 자신들의 사형 집행 영장에 스스로 서명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본절 말씀은 이사야 6:9-10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지 않으시면 인간의 머리로는 아무리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편지의 또 다른 핵심 주제로 여기서 처음 소개됩니다. 성령은 성도들 위에 부어져, 그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오는 시대'의 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열어둡니다. 
 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사람 안에 있는 영, 사고와 감정, 기억과 상상이 만나는 가장 깊은 내면의 생명은 그 사람의 진짜 면모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도 하나님께 그와 같은 역활을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메시아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기 전에는 일반 유대 백성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난 후 그들은 예수님을 전하는데 목숨을 바쳤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12-13,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에 대해 모두 알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바울이 왜 성가시게 편지를 쓰겠는가? 그러면 성령이 메시아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 혹은 메시아의 마음에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마음을 탐구하려면, 그들이 '온전히 성숙'해야 합니다(6절).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는 영적인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영'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려면 '영안'이 열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세상의 권세자들이 지혜자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많다고 해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안은 성령님이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함을 보여달라고 하면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목회자 또한 성령의 역사함으로 아픈 사람을 낮게 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시는 역활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 또한 병자를 고치며 기적을 행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치유와 축귀 사역은 '죄 사함'을 선포하신 사역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함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영안이 열린다는 뜻은 우리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는 '영성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영안이 열려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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