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15. 5:17-26.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2021. 10. 22. 08:24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풍환자 치유 사건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누가는 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들이 없는 상태에서도 중풍환자들을 치유하고 또한 그들에게 죄 사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 앞에서 굳이 '죄 사함'이야기를 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기록한 누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예수님의 소문이 전국 각지로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자칭 메시아란 자들이 수십 명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자들을 검증하러 다닌 것 같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어느 집에서 병 고침과 말씀을 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집들은 그리 크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무리들과 같이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그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무리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든지 아닌지 보다는 자기들의 병 고침에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5:18-19, "한 중풍환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팔레스타인 지방의 가옥은 지붕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었으며 지붕 또한 갈대의 재질로 만들어서 지붕을 뚫기가 쉬웠습니다.

 5:20-21,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죄 사함은 하나님이 대제사장을 통하여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걸까요? 바로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주체이면서 그 사함을 전달하는 대제사장의 역할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림을 받았으며 로마황제 또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5: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로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환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요? 예수님이 중풍환자를 치유함으로써 로마 황제는 제사만 주관하는 대제사장이지만 예수님은 죄를 사하여 주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중풍환자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그런 병에 걸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풍환자를 치유함으로써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로마 황제가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것을 데오빌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5:25-26,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결국은 이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또한 세상 권력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이 되는 데 일조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고자 했던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처형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은 로마서에서 거짓된 열심 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롬 10:2), 

 결국 이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잘못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자기 민족 이스라엘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너무 작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기들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오늘날 어떤 교인들일까요? 십일조도 철저히 하고 주일 성소를 목숨처럼 지키고 죄악 된 행동운 하지 않고 누가 보아도 거룩한 성도의 모범이 되는 신앙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처형을 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서 별로 좋게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을 했으니까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병 고침 전에 말씀을 전하실 때 어떤 심정으로 들었을까요?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평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촌놈이 올바른 신학도 하지 않은 채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오늘날도 수많은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와 자기 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비교합니다. 사람들은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의 설교는 뭔가 틀려도 틀린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공동체라도 그 공동체에 맞게끔 하나님은 그 목회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든지 아니면 받드지~전하는 사람은 내가 사역하는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분별을 해야 하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 목회자를 통하여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내가 혹시 바리새인은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