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3. 20:19ㆍ누가복음강해
오늘 말씀은 왕과 그 왕의 돈을 맡은 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교회사에서 본문 말씀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묘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역사의 종말에 예수님이 왕으로 돌아오셔서 신실한 제자들에게는 상을 주고 불성실한 제자는 처벌하실 것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마지막 심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가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재림에 대한 가르침으로 읽기를 의도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 시대에 훨씬 더 가까웠던 어떤 사건을 다룹니다.
예수님은 종들이 한 일을 보기 위해 돌아오는 왕의 이야기를 전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그동안 비유를 전했던 이유와 똑같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고 계신 일과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긴 여행의 종착지요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으로 오랜 세월 기다려온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권자, 의로운 왕의 귀환으로 이해하라고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숨은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시온으로 귀환하실 때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를 떠나는 이야기를 하십니다(12절), 그런데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여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14절). 본절은 헤롯 안티파스의 형인 아르켈라오스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주전 4년에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은 뒤, 아르켈라오스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로마에 갔는데 그를 원치 않은 유대인 사절단이 뒤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아르켈라오스를 비유로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 또한 이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를 것을 이 비유로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왕이 떠나기 전에 주었던 열 므나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청중에게 세 가지를 전달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즉시 오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정말 오고 있기는 하지만 자비와 심판을 동반한다고 선언합니다. 둘째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즉 그분의 메시지를 이미 거부하고 있는 도시에 도착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준비되고 있다고 암시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 선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여행과 하나님의 귀환을 극적으로 연결시키셔 복음 이야기에 깊숙이 내재한 숨은 비밀을 드러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시온 귀환에 대해서 말씀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계십니다. 메시아요 왕이신 그분의 사명에는 궁극적이고 보다 더 숙명적이 사명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바쳐진 도시와 성전으로 돌아와서, 어긋난 것들을 전부 바로 잡으실 것이라고 현재 보수적인 신학자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톰 라이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성은 헤롯에 의해서 화려하게 재건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BC 20년부터 재건하여 AD 64년에 완공되었다. 이 성전은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예수님의 예언대로(막 13:1-2) 완공된 지 6년 뒤인 70년에 다도가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함께 불타버렸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화려한 성전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내면에 있는 자기들을 높이고 싶은 '의'가 아닐까? 그리고 그 성전에는 인간들이 원하는 신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 신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신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틀리다는 것을 성경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성을 무너뜨려야 그 성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은 우리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 성이 무너져야만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 성의 벽돌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것이 '성화'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이 무너진 만큼 그 자리는 성령 하나님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재하고 계시다면 우리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맛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천국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사역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자들이 살아서 천국을 맛보지를 못한다면 어떻게 성도들에게 현세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시간에 생각을 해봅시다. 나의 내면에는 성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를~ 그리고 나는 지금 천국을 맛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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