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85. 24:1-12. "부활"

2022. 1. 24. 21:24누가복음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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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 이후에 달라진 삶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사건 이후에 그는 도리어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는 순교자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도 똑같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LORD)로 시인을 한다는 것은 황제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반란행위로 받아 들려 짐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주'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바울의 다메섹 사건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십자가 처형은 그 당시 지배세력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는 것이며 부활 사건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즉 그 당시 지배적인 메시아 사상인 다윗 같은 힘 있는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하고 그 메시아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다윗왕처럼 팔레스타인 인근을 다스리는 것인 반면에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인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 나라가 맞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건입니다. 또한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화목 제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건입니다.

 구약 시대에 7월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제물로 바친 양의 피를 속죄소에 바르려고 들어갑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허리에 방울을 달고 줄을 매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 제물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그 자리에서 죽기 때문에 죽으면 대제사장의 시체를 끌어내려고 줄을 매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밖에서 대제사장이 살아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대제사장이 살아서 나오면 그들은 기쁨의 환성을 지릅니다. 하나님이 그 제물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들이 1 년 동안 지은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활 사건 또한 예수님이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부활 이전에는 예수님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는 예수님은 신(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여자들은 일요일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왔습니다(1절). 이른 시간에 가야만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고 가능한 빨리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는 예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3절). 누가는 예수님을 '주 예수'라고 처음으로 표현합니다. 이때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나타나 '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는지 묻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을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자들에게 천사는 예수님이 이미 갈릴리에서 부활에 대해 예고하신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니다(6절)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7절). 천사들이 전한 내용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9:22, 44)
 24: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여자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사도와 다른 이에게 알리니(9절). 아마도 제자들은 멘붕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자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다들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제자들 또한 자기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10절). 만약 누가가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난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절대로 여자들을 맨 먼저 무덤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들은 신뢰할 만한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즉각 부활 사실을 믿게 함으로써 그들이 믿음의 모델이 되어 갓 태어난 교회를 이끌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 들려 믿지 아니하나"(11절).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여자들은 기억을 하고 있는데 왜 제자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제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던 메시아사상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난 예고의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무덤을 보니 세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12절). 세마포는 시체를 감싼 천입니다. 베드로는 상황을 보고 놀랐지만 부활을 믿지 않은 채 돌아갔습니다.
 본문에서 여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수십 년이 지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않았서도 '믿음으로' 부활을 받아들이고 부활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도전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여자들보다 더 못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난 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말로써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면서 사도들이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과연 초대교회는 존재하기는 했을까? 
 부활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들의 삶에 역사하신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기독교는 머리의 종교가 아니고 심장의 종교입니다. 심장으로 반응을 해야 우리들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의 심장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뜨겁게 불타고 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