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43. 13:13-25. "안디옥에서 한 연설"

2022. 5. 12. 11:33사도행전강해

사도 바울의 1차 선교의 큰 결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있었습니다.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은 큰 영적인 대결도 있었지만 온 도시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오게 할 정도의 강력한 부흥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구브로에서 배를 타고 아시아로 나오면 버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기에 북쪽으로 직진해서 올라가면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은 바울이 대륙으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이들이 전에 있던 안디옥 같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내륙 지방의 교통의 요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 증거가 일단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상업이 아주 발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은 상당한 수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바울이 자란 다소와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터키 지방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의 생활을 알고 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와 노래를 알았기에 복음의 요점을 전달하기 좋았을 것입니다.

 13절에서 말하는 요한은 마가복음을 저술한 마가를 가르킵니다. 마가가 중도에서 포기함으로 2차 전도여행에서 동행하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의 견해 차이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로 마가복음을 저술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베드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3:15-16,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당시 회당에서는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고 나서 방문객에게 신선한 권고의 말을 청해 듣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강단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쉽게 얻었습니다. 향후에도 바울의 전도사역은 회당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유대인들끼리는 즉각 교제를 하고 잘 모르는 방문객도 공예배에 기꺼이 맞이했습니다. 덕분에 바울은 좋은 소식을 자신의 의도대로 ‘유대인에게 먼저’(롬 1:16) 전하는 데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회당에 출석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아직 개종하지 않아서 공동체의 온전한 회원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17~25절까지는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7장에서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특별한 시점들을 장조하며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에 집중했던 반면, 바울은 초기 시절을 빠르게 지나 사울과 다윗의 왕정 시대로 넘어갑니다. 즉, 17~20절의 주요 요점은,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드러나는 지점까지 하나님의 목적이 전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3:21-22,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나 하시더니”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왕정이 잘못된 권력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바울은 분명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다윗왕을 택하게 된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 있어서 결함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로마서 4:6~8에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전형적 참회자로 인용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요점은 이 이야기가 다윗에서 멈췄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왕, 궁극적 왕, '위대한 다윗의 더 위대한 자손‘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본문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해’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론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은 온 세상을 위해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먼저 예수님을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보아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제 성취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적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좋은 소식,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에게 퍼뜨려야 할 좋은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 약속에는 온  세상을 위한 복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구원자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스라엘이 무엇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뒤에 가서 ‘죄 용서’에 대해 말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1세기의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 차원에서 이스라엘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자유롭게 살지 못했고, 이방 민족에 그다지 빛이 되지 못했고, 이방 사회의 압박 때문이든 유대인 공동체의 나태함 때문이든 고유의 법을 지키지 못한 때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도대체 언제 실현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언제 이 끊임없는 곤경에서 구출될 것인가? 하는 개인의 문제이면서 공동의 문제인 이런 암묵적 질문들에 대해 바울은 구원자 예수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4~25까지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세례 요한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메시아가 아무런 사전 발표 없이, 이스라엘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오실리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요한이 한 일은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에서 돌아서도록 회개하게 했고, 또한 앞으로 오실 분을 가리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천년 전의 다윗에서부터 대략 15년 전의 요한까지 이정표를 세웁니다. 그 모든 이정표는 한 사람을 기리깁니다. 바로 구원자 예수입니다.

 바울은 터기의 한 회당에서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청중에 맞게끔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어느 장소 어느 곳에서도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지 그곳에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맞는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어느 곳에 가던지 항상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