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10:52ㆍ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오늘 본문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쉽기 때문에 잠시 멈추고 우리들이 올바른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지, 관련 정보를 전부 고려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측정 방법에 따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10:12-13,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가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을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본문에서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마치 8장 끝에서 바울이 디도와 함께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사도이거나 아니면 사도들이 보낸 사자였다는 느낌을 다음장에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바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게 하려고 애쓰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갈라디아서에서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여 바울이 맞서 싸워야 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바울의 논증은 분명 그 문제를 겨냥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단지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을 깊이 존중해 주기를, 자신들이 훌륭한 교사와 지도자로 인정받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바울이 별 볼일 없는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인물임을 부각하려고 애써 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가? 이것이 바울이 끈질기게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서로 비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룬 업적, 그동안 자신이 수행해 온 임무에 대해 생각할 때, 바울은 단지 다른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실측 도구, 즉 애당초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으로 이루어진 잣대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중요한 비교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 자신이 부합하느냐 여부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바울을 반대라는 자들은 바울이 세운 교회 안에 들어와 혼란을 부추기는 일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불법이 울타리를 넘어와서 양들을 훔치거나 죽이는 강도와 같은 자들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식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으며 고린도 교회도 그 한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는 일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임무의 일부입니다. 바울은 그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백성들의 친밀한 가족 관계 안에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속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그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전에 분명히 해 두어야 할 내용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평가를 해야 한다면 바울 자신을 거기서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15-16,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마치 자기들의 것인 양 함부로 손을 대고 자랑하였지만 바울은 먼저 한 사람의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파렴치하고 야비하게 자랑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배정된 범위 안에서만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바라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계속 자라는 것과 바울 일행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욱 넓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사역을 한층 더 진척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편지 맨 첫 구절에서 보았듯이, 복음은 고린도를 넘어 그리스 남부의 다른 지역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복음이 점점 더 확산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안겨 줄 더 많은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전에 믿었던 하나님이 자신들이 지금까지 꿈꾸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새로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리더십 유형과 개인 숭배 따위를 놓고 벌이는 소동을 멈추고 진짜 복음의 과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일은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께 받은 구체적인 사명은 개척 선교사와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전에 복음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평가받아야 할 ‘기준’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다면, 주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다른 사명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갈라디아서 2:9에서 자신이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예루살렘 사도들과 맺은 협정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곧 그들은 유대인 공동체로 가고, 바울은 이방인 공동체로 간다는 협정인 것입니다. 그가 가장 깊은 관심을 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여겨져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구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설립 사도’의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17-1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본문은 기독교적 ‘자랑’의 참된 본질로 압축되는 말씀입니다. 즉 ”누구든지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 바울은 앞서 고린도전서 1:3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이 구절은 에레미아 9:23을 인용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이 구절은 교회가 자랑하려 하는 온갖 다양한 것, 특히 내용보다 말주변에 훨씬 능한 교사들을 통해 얻은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이 십자가의 수모 아래 굴복해야 함을 나타내는 표지판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목적을 갖고 이 구절을 재차 안용합니다, 그는 교린도 교회를 향해 ‘자기를 내세우지만’ 주님께는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주님께 칭찬을 받을 만한 자랑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데살로니가강해 > 고린도후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9. 11:7-15. "사탄을 경계하라" (1) | 2024.06.14 |
---|---|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8. 11:1-6. "그리스도의 신부" (0) | 2024.06.13 |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6. 10:1-11. "하나님의 능력" (1) | 2024.06.11 |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5. 9:6-15. "후한 헌금" (1) | 2024.06.10 |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4. 9:1-5. "자발적인 연보" (0) | 2024.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