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골로새서강해]#8. 2:13-19. "십자가의 능력"

2024. 7. 5. 11:43골로새서강해

 

고대 세계에서는, 즉 전자 매체나 인쇄 매체가 없었을 세상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와 장군들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돌아오며 자신들이 얼마나 멋진 승리를 거두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포획한 노획물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길고 꽤쬐쬐한 포로들 행렬, 그 줄의 맨 끝에는 그들이 막 패배시킨 나라의 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축하의 절정으로 예식 절차에 따라 그 왕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푯말을 붙여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을 때, 그들은 앞서 언급한 개선 행진 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로마로 돌려보낼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째든 그는 군대를 이끌지도 않았고 강력한 군사 혁명을 주도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이상한 사람까지 포함해서 반역자 의 십자가형은 로마에게는 또 다른 상징적 승리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보기에도 그것은 이교도 권력 전체의 상징적 승리였을 것입니다. 1세기 세상의 일반적 시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들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그를 발가벗겨 그에 대한 승리를 공개적으로 축하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 좋을 것입니다.

 2:13-14,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못하도록 막고 유대인들은 그 규율을 어긴 것에 대해 책망하는 유대 율법, 즉 모세의 율법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심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조문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말하듯이 그러므로 메시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가 없···다”. 그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우리의 죄와 범법을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음으로써 그 모든 것의 영향력 아래에서, 우리를 넘어뜨릴 모든 정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2:15-17,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의 무장을 벗겨 내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붙들어 대중의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들과 권세자들을 패배시킨 그분의 승리를 축하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생각했던 바로 그 권력들을, 바울은 언제나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역설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약함(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한 것)이 인간의 강함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를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즉각적 결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헌신이 아닌 특정한 형태의 경건과 헌신으로 유혹하려 할 때 당신은 그것을 무시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바울이 언급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특히 바깥 이방 세상에서 그들의 예배 생활, 즉 절기와 초하루 축제와 안식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바울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확실한 물체에서 드리운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확실한 물체란 것입니다. 물론 그 확실한 물체, 실체는 메시아,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유대 율법의 의식들은 그 메시아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이 여기 계시므로 그것을, 즉 율법의 의식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바울은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2:18-19,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주는 기술들, 즉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읽기등,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반항적 삶을 그분의 권위로 다루시도록 간구하게 해 주는 기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 방식이 우리들에게 가장 잘 맞는지 찾는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본 환상에만 매달려 그 한 가지 영적 체험만을 인정하는환상의 세계에 사는 어떤 교사가 강요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고대 세계처럼 현대 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왜 그런 가르침에 따라야 하는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부적격자로 보거나 비난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인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뿐이란 것입니다. 그분을 꽉 붙잡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미 1:161:16에서 말했듯이 그분은 의 머리이십니다. 몸은 머리가 생각하고,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머리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인 몸은 이런저런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관절과 근육과 인대로 머리를 꽉 붙잡아 양분을 공급받고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명심하고 실천하면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유지하는 많은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2,000년 역사가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갈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에 무엇을 추가해야한다는 압박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