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5. 15:50ㆍ마가복음강해
예수님 당시 시대에는 가족 간의 유대가 단단하고 오래갔다고 합니다. 즉 자녀들이 장성하더라도 부모와 가까이 사는 것, 심지어는 같은 집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족 단위가 곧 사업 단위일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끼리 모든 것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유대인 가족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하나님이 주신 사고방식이자 삶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에 대한 충성은 곧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의 이런 정체성에서 핵심을 이루는 상징들도 곧잘 흔드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족 간의 유대는 안식일 준수와 음식 규정 등 유대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다른 것들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존의 가족관계를 가지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3:31-32, “그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가버나움은 나사렛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꽤 먼 길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들이 걸어온 것입니다. 요셉은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는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마가는 2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껏 평범하게 살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표적과 이적을 행하고 자신이 메시아인양 행동하니 가족들 입장에서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유대 사회도 우리 사회와 비슷해 가족 관계나 혈연관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병자를 고치고 말씀을 전하느라 바쁘셨다 해도 일단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부르면 중단하고 만나실 줄 알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족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가 내 가족이냐?”라고 묻습니다.
3:33-35,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여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않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예수님은 전통 구조를 단칼에 잘라 버리십니다. 예수님께는 다른 소명, 다른 사명이 있는데 그중에는 가족 간의 신성한 유대를 깨는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시곤 합니다. 새로운 가족, 새로운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고 일반적인 인간의 가족 관계는 배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 말씀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되지 않은 다른 소속감이나 집단 정체성에 쉽게 빠져듭니다. 오랜 우정, 집단, 부족, 가족, 클럽, 당, 사회 계급 등에 대한 소속감이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대체하기가 쉬운 현재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해도 우리는 예수님 ‘주위에’ 있으라는 요청,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요청에 응해야 할 것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교회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의 가족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이 우리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음에 오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나름대로 많은 부와 지위를 누리면서 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세상에 충격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권세가 이 세상을 죄로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서 세상 권세에 결박당한 많은 사람을 건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고 사명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소명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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