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19. 5:21-34. "야이로의 딸과 만성 혈루증 여인"

2023. 7. 13. 15:26마가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한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배치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마가의 샌드위치구조라고 부릅니다(11:12-25에서도 볼 수 있다). 바깥쪽 이야기는 지역 회당장 야이로와 그의 열두 살짜리 딸의 이야기이고, 안쪽 이야기는 그 딸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마찬가지로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리며 상당히 고통받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두려움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예수님께서 사람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이끌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5:21-23,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예수님이 거라사 땅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실 때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그 이적을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절박한 사람은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회당장이라는 직책은 유대 사회에서 지도급 인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회당에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도층에서는 예수님을 정죄해 회당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야이로가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 앞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 딸의 병이 낫도록 간구한다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모든 명성을 잃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오신 후 그분을 회중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교 율법에 정통한 지역 학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불편해했고, 이런 소문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야이로 입장에서도 자기 마을에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인물이 나타난 것에 대해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중립을 지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재난이 닥친 것입니다. 열두 살 먹은 자기 딸이 중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 당시 열두 살은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거리들 두고자 하는 이상한 선생이 이제 막 바다 건너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야이로는 서둘러 예수님을 찾아가 그 발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지금 그에게는 종교적인 논쟁이나 정치적 위험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와 함께 가십니다. 물론 지대한 관심을 가진 무리도 따라갑니다(24절).

 5:25-28,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않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함일러라”이제 샌드위치 안쪽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혈우병은 율법에 의하면 다른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혈우병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수 없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은 이 여인은 돈도 다 써버렸고 또 병 때문에 사람들과도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사람이 많은 곳에 온 이유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같이 부정한 사람이 감히 예수님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스스로를 예수님 앞에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예수님의 옷만 잡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만 잡아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잡았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29-30,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고 예수님에게서 이 여자에로서 저절로 능력이 흘러가서 이 여자의 병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가운데 치료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이 여자는 그 즉시 병이 나은 것을 알았고 예수님은 자기에게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만짐으로 인한 치유, 특이한 치료자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치유는 너무도 특이한 현상이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독자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개인과 예수님의 친밀한 접촉을 강조하며, 마가는 독자들도 이러한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사방에서 압력을 느낀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여자처럼 예수님 뒤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심정은 두려움과 믿음이 뒤범벅된 상태겠지만, 이 또한 기독교 제자도의 특징이기도 한 것이라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자가 병이 나은 것으로 끝내지 않고 이 여자를 찾으셨습니다(31-32절).

 5:33-34,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그 여자를 구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인가 아니면 그 여자의 믿음인가 하고 독자들은 궁금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능력이 그 여자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비록 믿음이 그 자체로는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능력이 작용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라고 마가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우리들을 구원하지는 못할지라도 구원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으로 오셨을 때 그 수많은 무리들이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이런 믿음을 가졌다면 예수님은 과연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까? 그러면 우리들의 죄는 어떻게 대속을 받게 되었을까?

 이 시간 나는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