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18. 5:1-20.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2023. 7. 12. 11:53마가복음강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 동쪽은 골란고원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현재에도 분쟁 지역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도 현재만큼 정치가 복잡했다고 합니다. 주전 4년에 헤롯 대왕이 죽고 그의 아들들이 나라를 나눠 가질 때, 빌립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배경인 남서쪽은 유대인의 땅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열 도시’라는 뜻의 ‘데가볼리’라고 불렀는데,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1절의 내용은 번역본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5:1-2,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갈릴리 바다를 경계로 서쪽과 동쪽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전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우상 숭배와 미신에 빠진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유대인의 땅이 아니고, 거주민들도 유대인이 아니었던 곳입니다. 만약에 유대인이 살았다면 돼지를 쳤겠는가? 유대인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긴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무덤 또한 유대인에게는 부정한 장소로 여겨졌던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시신이나 무덤과 접촉하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무덤 사이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 나온 이 귀신 들린 남자는 여러 면에서 부정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귀신 들린 남자는 너무나 그 증세가 심하여 아무고 그를 감당할 수 없었던 존재라고 마가는 말하고 있습니다(3~5절). 그런 그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5:6-8, “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본문은 앞서 “ 그가 누구이기에”(4:41)에 대한 마가의 대답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로 여겼으나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100년 전쯤에 로마가 이곳 전역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물론 로마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방해되는 사람이나 향후 로마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들을 모두 짓밟았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지역에 전쟁이 없고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팍스 로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즉 로마의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로마를 적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탈을 쓴 사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마가는 이 귀신들린 남자를 등장시키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마가복음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쓰인 책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서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세상 권세를 대표하는 로마와 예수님과의 영적전쟁에 대한 말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5:9-13,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본문에 나오는 “군대”에 해당하는 레기온은 여단 규모로 약 6,0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돼지는 1차 유대전쟁 때(66~70년), 예루살렘에 동원되었던 로마 10 연대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가는 로마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일은 매우 극적이며 상징적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건 아니건 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은 로마가 다시 지중해 바다 건너편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첫 독자인 로마의 성도들도 다니엘서 같은 책을 읽었다면 바다를 괴물이 사는 곳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 괴물은 세계 정치의 장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기도 한 것입니다. 로마는 괴물 중에서도 괴물이라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는 부정한 돼지의 민족이며 로마에게 제일 어울리는 장소는 원래 괴물이 있어야 할 바다 속이란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로마의 첫 독자들은 온갖 핍박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이 났을까? 이처럼 성경은 첫 독자의 눈높이에서 읽으면 해석을 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본문은 정치적 속박의 고통과 불의 이면에는 영적 전투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영적 측면이 없다면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폭력의 끝없는 순환만 남을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야말로 이 땅의 모든 세력을 굴복시키는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나라의 사자들은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결과가 하나님의 샬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모든 걱정거리와 근심거리를 모두 없앤 뒤에 찾아오는 평화이지만 하나님은 평화는 그 걱정거리와 근심거리를 함께 하면서 찾아오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인생에서 걱정거리는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의 평화는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평화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살롬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일 것입니다.

 5:18-20,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 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치유받은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남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계속 하나님의 은혜만 간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아마도 본문에 나오는 군대귀신 들린 사람은 ‘이방인의 첫 사도’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