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9. 16:42ㆍ마가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40일간 광야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기독교 복음을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은 세례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보면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로 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메시아이고,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에게 해당하는 것은 그 백성에게도 해당됩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떻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11,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집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셨습니다. 여기서 세례 받는다는 것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죄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죄인의 대표가 되신 것입니다. 비둘기는 ‘부드러움과 순결, 온순함’을 상징하며, 소식을 전하고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새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내적인 경험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몇 성경 본문에서는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불립니다. 본문에서도 “내 사랑하는 아들”은 시편 2:7을 연상시키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았음에도, 그분의 메시아 되심에 더욱 집중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메시아시기에 하나님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신 그 말씀을 그들에게도 하셨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본문의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진정으로 이 말씀이 우리 내면에 울린다면 우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데 우리들은 세례를 그냥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통과 의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마가는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실 때 구약성경을 연상시키는 엄숙한 언어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이 열린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저 멀리 하늘에 작은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일상의 실재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영역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즉 우리 세계와는 또 다른 영역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다른 실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요 20:29). 아마도 초기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본문을 읽고 자신이 메시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도 커튼이 열리고 이 음성이 들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교회가 감당할 사명일 것입니다. 성령을 경험한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십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경험한 우리들도 광야로 나갈 채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12-13,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예수님은 지금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그들의 여행을 실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기 때문에 황량한 광야를 지나 유혹과 실패를 넘어서는 길을 걸어야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육신의 아버지들처럼 꾸중하시고, 심지어 내쫓기까지 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면서 광야의 길을 나선다면, 우리는 아주 작은 유혹에도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기억한다면 우리들은 무사히 그 길을 지나갈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들 짐승”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도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사탄에게서 시험을 받으시는 것을 막기 위해 거기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지막에 예수님이 십자가처형 때문에 갈보리로 가시는 것을 막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들은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를 지켜보시며, 그곳에 함께 계시며, 그를 사랑하시며, 그를 통해 일하시며, 항상 그 안에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확신을 예수님께 주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방식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한 가지는, 예수님의 생애를 바로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 생애를 보고, 그것을 하늘의 비전으로, 하늘의 음성으로 보고 듣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음성을 자신을 향한 음성으로 듣는 법을 배우고, 그 음성을 듣고 변화되고 빚어져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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