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3. 1:14-20. "제자들을 부르시다"

2023. 6. 20. 16:38마가복음강해

 

복음은 그리스어로 “euaggelio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새로운 계명, 새로운 세상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인류의 죄악에서의 구원을 알리는 이야기이며, 이를 믿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후에 그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세례 요한은 헤롯 안디바가 동생의 아내를 취했다고 공격을 하는 바람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요단강 가에서 그 나라를 선포하는 동안에는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감옥에 갇히자 이제 행동할 때가 되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기도를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때가 왔다고 알려 주실 때까지 기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좋은 소식을 전하시는 사역을 하시려고 요한처럼 한 곳에 머무는 예언자가 아니라 돌아다니는 예언자로 갈릴리 마을에 지금 일어나는 일을 긴급하게 알려야 하는 전령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의 개념을 잘 알아야 합니다. 흔히 교회에서는 “회개하고 좋은 소식을 믿으시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시오”라는 뜻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를 그만 짓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 외에 다른 의미가 더 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사상, 즉 무력 투쟁으로 로마로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시대적 조류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께 진정한 충성을 바치는 길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회개의 개념은 무엇일까?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상, 즉 맘몬신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개념을 잘 모르면 복음서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요청은 지금이 위대한 자유의 시간, 하나님이 구출하시는 시간이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회개에 대한 요청은 믿음의 요청과 나란히 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온갖 것을 믿었다고 합니다. 조상과 땅과 성전과 율법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믿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들의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소식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 동참하려면 자신을 붙잡는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예수님과 그분의 메시지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동참할 제자들을 예수님이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1:16-18,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인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본문은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신 것을 연상시킵니다. 아브라함은 베드로와 그 일행처럼, 지시받는 대로 자신이 보냄 받은 곳으로 갔습니다. 지금 마가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까지 이어 오던 가업은 두고 가야 한다고 암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기다렸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셨고, 이제 그분의 나라가 오신다는 좋은 소식에 확실한 답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질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것입니다.

 1:19-20,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야고보는 나중에 제자들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가장 오래 살면서 요한복음, 서신서, 계시록을 집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어부로써의 가업을 이어갈 책임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품꾼까지 고용했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중산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들을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나서게 했는가? 아마도 시몬의 형제나 야고보의 형제들은 서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갈릴리는 열심당의 본거지라는 것이고, 베드로는 열심당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들 안에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그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무력 혁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좋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는 것을 복음서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때까지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것인데, 그들은 그때까지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지 못하고 따랐던 것입니다. 회개는 믿음과 연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자들(4:40)이라고 했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소식을 믿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 일에 동참하려면 자신을 붙잡는 것을 다 끊어버리고 예수님과 그분의 메시지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렇게 했고, 오늘날 우리들도 그리고 미래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모든 것을 끊어내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