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0. 15:22ㆍ마가복음강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뉴스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왕가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다음은 섹스입니다. 특히 고위층의 섹스 스캔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헤롯과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이 세 가지가 다 합해진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헤롯의 생일날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6:17-19,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으라”헤롯 안티파스는 로마에 있던 동생 빌립 집에 머물다가 헤로디아와 불륜관계를 맺고 살로메와 함께 유대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으므로(레 18:16), 요한은 헤롯이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를 취한 문제로 그렇게 헤롯을 비난한 이유에는 단지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율법에 반하며 게다가 유대인들에게 좋지 않은 본보기가 된다는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헤롯은 자기 아버지처럼 야심이 컸다고 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진정한 왕으로 보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헤롯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한 자기 아버지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1천 년 전에 솔로몬이 첫 성전을 지은 이후로 왕족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일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아주 다른 종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제시하는 그의 세례는 성전 자리를 넘봤던 것입니다. 이제 곧 오실 분이라고 그가 약속하는 사람은 헤롯과는 아주 다른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헤롯의 열망은 격에 맞지 않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겠는가? 메시아라는 사람이 자기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겠는가?
6:19-20,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라”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이 요한의 말을 반복해서 들을 정도로 그는 요한의 말 때문에 불편한 마음과 그래도 계속 듣고 싶은 이상한 마음 사이에서 그는 갈등하고 있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그날이 왔던 것입니다.
헤롯의 잔치 날에 헤롯은 의붓딸의 관능적인 춤을 추는 것을 보고, 헤롯은 술에 취해 경솔하게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으러 갔던 그 예언자를 처형하라고 헤롯은 명령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고 10년이 못 되어 헤롯은 멀리 골 지방으로 유배를 떠나 불명예스럽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세대 안에 요한의 이야기는 마가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는 하나님 나라를 용감하게 증언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가는 오늘 본문을 통해 공동체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세상 나라들은 하나님 나라에 복속되겠지만 앞서서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화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은 이 사건의 특징이 비극적 요소를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가는 로마 총독과 유대인 대제사장과 변덕스러운 무리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적 결과인 예수님의 죽음만 내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자신이 아는 그리스도인의 작은 공동체들, 정부가 그들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붙잡겠다는 결심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받는 세계 곳곳의 공동체들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요한이 자신을 처형하려고 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했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유대교의 이야기와는 달리, 유대교 순교자가 죽기 전에 연설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더 전하고 하나님의 복수를 경고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순교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유대교의 순교자들은 상대방에게 하나님이 복수를 할 것이라는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순교를 기꺼이 자청한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라가 예수라는 인물을 속에서 임하였다는 본질적이고 유대적인 그들의 신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독자들이 요한을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요한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하나님 나라와 그가 제시한 용서가 종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이처럼 침통하고 추악한 이야기에도 신실한 증거와 끊임없는 희망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 주변에서 그리고 우리들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영안이 열린 사람들일 것입니다.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무슨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영안을 열리게 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기도할 것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영안이 열렸는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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