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3. 12:05ㆍ마가복음강해
신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사본인 4세기에 만들어진 알렙과 시리아 사본에서는 오늘 본문이 끝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은 필사자들이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마가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침묵하는 여자들로 이 책을 마무리하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신학자들도 많습니다. 즉 아주 초기의 마가복음 사본이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의 다른 많은 두루마리와 책처럼 마지막 페이지나 마지막 단이 실수로 찢어졌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사본의 마지막 부분인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리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셨다는 것을 마가는 반복해서 독자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예수님이 수수께끼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고, 마가는 독자들이 그 사실을 분명히 알기 바랐던 것입니다.
16:1-3,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여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러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첫 매장 때 놓친 일을 하러 갔던 것입니다. 슬프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고인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으며, 또한 부패한 냄새를 줄이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2차 매장으로 예수님의 뼈를 수습해서 함에 안치하기 전에도 다른 시신들이 같은 무덤에 안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즉 일몰이 지나간 토요일 저녁에 향료를 산 것입니다. 그리고 한 주간의 노동이 시작되는 일요일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무덤으로 간 것입니다. 커다란 돌을 옮기기가 힘들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리 기대하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돌은 이미 치워져 있으며 무덤 안에는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여자들은 놀랍니다(3~4절).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천사는 이미 여자들이 무덤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으며 놀라지 말아야 할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다시 일어날 수 없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에 의해 살리심을 받은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은 하나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이루어졌고 예수님에 의해 결정적으로 실현된 역동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빈 무덤에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부활의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인 것입니다(고전 15:8). 세 번째로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란 것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을 눕혔던 곳을 구체적으로 가리켜 확인시키며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16:7-8,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특히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한 것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수치스러운 실패(14:66-72)를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의 목격자가 되어 앞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그에게 최고 지위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예수님을 부인했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여자들은 당연히 혼비백산해서 집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마가가 정말로 여기에서 글을 마치려 했고, 독자들이 그런 결말에 따른 불확실성의 어둠 속에 빠져 있기를 바랐다는 주장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신비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가벼운 해피엔딩 대신에 훨씬 더 강력한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마가의 책이 오늘 본문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정말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믿는 초대교회의 믿음만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믿음도 탐험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비어 있고, 우리는 스스로 그 결말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는 부활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이한 새 일에 경이로워하는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그분이 지금 우리보다 앞서서 가시는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일은 무엇인가? 에 대해 우리들은 끊임없이 탐험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부활 사건에 대해서 어떤 탐구 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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