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16. 27:1-10. "유다의 죽음"

2023. 1. 17. 16:40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의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유다의 죽음은 사도행전(1:15-20)과 마태복음에서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과 마태복음에서의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그러면 마태는 유다의 죽음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27:1-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본디오 빌라도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파견된 로마의 관리였는데, 가혹하고 지혜롭지 못한 판결로 인해 속국민들로부터 자주 비난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군인들이 무장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죽이게 내버려 두었고, 성전 금고에 있는 돈을 수로를 건설하는 세속적 목적을 위해 섰다고 합니다. 그는 유대 지역을 10년 동안(26-36년) 다스렸고, 결국 불명예 소환을 당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빌라도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로마황제, 유대인의 왕과 이 세상의 왕이 맞선 대결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습니다.

 27:3-4,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당하라 하거늘”아마도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대제사장무리들에게 넘겨주면 예수님이 가야바를 굴복시키고 모두가 예수님에게 설득당하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러한 상황이 닥치면 예수님이 만일을 위해 대기시킨 열두 부대의 천사들을 부르실 것이라 기대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유다는 그때서야 후회하며 돈을 돌려주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과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는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소란과 문제를 일으켜 로마의 분노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들이 로마와 특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고, 로마 총독이 특별히 그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로마는 곤란한 상대였고 그런 상대에게 자신들이 불리한 구실을 주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즉 소요 사태가 일어나 로마 군인들이 그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이 되면 자신들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유다가 자신의 죄책을 통렬하게 한탄하며 도움을 청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앞절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유다가 한 후회와 베드로가 한 진정한 회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회와 회개는 모두 자신이 한 일을 보고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는데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후회는 분노와 자기 증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 즉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즉 베드로가 택한 길은 눈물과 수치와 생명으로 돌아오는 길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를 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무리들은 유다가 도로 준 돈을 성전 금고에 넣지 않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습니다(6-8절).

 27:9-10, “이에 선지자 에레미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었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본문은 스가랴 11:12-23을 인용했습니다. 아마도 마태는 스가랴 본문을 인용하면서 에레미아를 참조한 것 같습니다(렘 18:2-12, 19:1-5). 마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 모든 과정이 구약에서 예언된 모든 일들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단순히 유다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며 후회했고 제사장들은 냉담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전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모래 위에 세워졌고 그래서 모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서 있던 산을 향해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제 그렇게 바다로 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환전상의 탁자를 둘러엎어 회생 제사를 잠시나마 멈추었는데, 대제사장은 메시아의 경고와 도전을 듣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가 대변하는 제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다의 비극은 끔찍하며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비극은 그보다 더 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공식 관리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느라 성전의 기초가 모래 속으로 가라앉고 벽에 금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었다고 바울은(고 3:16)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전 주인인 우리들 또한 그 성전이 무너지지 않게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처럼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 정신이 팔려서 성전이 무너지는 것도 인식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성전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