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9. 20:58ㆍ사도행전강해
우리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과 상응하게 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님이 복음을 위해 고난 받으신 것처럼, 각 세대도 각각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고난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의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누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단순히 반복되는 패턴으로 보지 않습니다.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로 역사는 절정에 도달했고 이제는 새로운 형태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하시는 고난은, 그분 자신의 고난과 죽음의 고유한 효과로 가장 깊은 차원에서 그 성질이 변화된 고난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 시대의 조류와 문화에 맞게 받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합니다. 바울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의 고난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1: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르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함이라”가이사랴에서 해발 800m 고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야 100km 정도가 되며, 걸어서 보통 3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나손은 오래전에 제자가 된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120명 제자들(1:15)중의 한 사람이거나 예루살렘 교회 창립 때부터 교인이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21:18-19,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써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갈 1:19).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사도로 불렸지만 12제자 증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자인 야고보는 일찍 순교했고, 다른 사도들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는 없었다고 갈라디아서 1:19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이방에서 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고 하는데 안디옥에서 일어난 폭동, 루스드라에서 돌을 맞은 일, 빌립보에서 매질당한 일, 데살로니가에서 일어난 폭동, 베뢰아에서 도망 나온 일, 고린도에서 당한 소송과 반 유대교 폭력 사태, 에베소에서 이교도 2만 5천 명이 구호를 외쳤던 사건 등을 소상히 다 이야기했을까? 예루살렘에서 많은 교인들이 바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바울은 소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좋은 이야기 위주로 했을 것입니다.
21:20-21,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 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야고보와 장로들은 기뻐하면서도 바울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믿는 유대인들이면서도 “율법에 열심히 있는”, 즉,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구원을 얻는 수단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정해준 생활방식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21: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의 신변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해결책은 바울이 말로써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21:23-24,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바울 또한 말로써 설명하기가 힘든 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계획에 따르기로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맹세한 네 사람이 있는데 아마도 30일간의 나실인 서원을 한 것 같습니다(민 6:1-21), 남은 한 주간 동안(27절) 그들과 함께 자신을 정결케 하고 그 머리 깎는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에 대한 소문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도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 유대인 그리스도에 대한 배려를 요청함과 동시에 이방인 그리스도에 대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15:1-34)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25절).
바울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유대인이 될 필요는 없으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그러므로 더 나아가 유대인들도 조상의 전통과 관습을 버려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큰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설명으로는 안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상징적 행동을 할 채비를 하고 그들의 계획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한다고 해도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 또한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서 자기 앞에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난의 연속에서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어떤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은 온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전염병은 역사 속에서 많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초대 로마교회에서도 큰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었을 때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전염병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걸고 간호를 했고 뒤처리를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또한 그렇게 하면 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또 우리 기독교인들을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지금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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