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76. 23:12-22. "맹세와 음모"

2022. 8. 31. 11:12사도행전강해

하나님은 왜 우리의 삶 속에 바로 나타나고 개입하지 못하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우리는 늘 품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의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은 스스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방법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상태(엡 2:14)를 제거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확증해준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임하실 수 있게 된 것이라(골 1:13)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직접 경험하고 느꼈기 때문에 바울의 신학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또한 바울의 삶 속에서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건을 누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공의회에서 합법적인 것처럼 꾸며 바울을 죽이려고 하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유대인들은 함께 모여 음모를 꾸미는 내용입니다. 23:12-13,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날에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아마도 40명으로 구성된 암살단은 이렇게 맹세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 먹거나 마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주하실 것이다”. 이것은 목숨을 건 종교적인 광신이었는데 바울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단식하는 일은 유대인 사회에서 오랜 전통처럼 내려왔습니다(삼상 14:24). 아마도 이들은 당시 과격한 열심당원들로서 항상 단검을 지니고 다니면서 요인들을 암살하는 악명 놓은 자객들이었으며 아마도 아나니아의 사주를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맹세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결심이 확고한 것임을 다시금 재확인하였습니다(14절). 그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어서 천부장에게 접근하여 바울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아보려는 것처럼 꾸며 내려올 때 죽이려고 하였습니다(15절).

23: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사도행전에서 바울의 가족에 대해 언급된 유일한 경우입니다(참조 롬 16:7,11). 학자들은 바울의 누이가 대제사장 가문에 시집을 갔고 그 아들이 우연히 암살단들이 살해 음모를 꾸민 것을 듣고 외삼촌에게 전해주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가 부대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면 상당한 지위를 가진 가문에 속해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시실리에 있는 그의 부유한 아버지 가족과 의절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참조 빌 3:20)

 23:17-22까지의 내용은 바울이 백부장 중 한 사람을 통해 조카를 천부장에게 보냈고, 조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천부장은 신속히 조처를 취하려고 했습니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에 대한 책임 때문에 바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바울의 입장에 많이 동조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라고 당부한 것은 젊은이의 목숨을 보호하고 가이사랴로 호송하는 일을 암살단의 훼방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천부장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무사히 갈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환상을 본 바로 그날 밤에, 한 소년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에 있어서 귀를 쫑긋 세워 들었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알았다는 것뿐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 40명의 무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굶어 죽었을까? 갑자기 십계명 중 세 번째 계명이 생각이 납니다. 출애굽기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그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명예와 그분의 율법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인 만큼, 가장 엄숙했던 그 맹세조차도 실은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자신의 양심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현실을 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우리가 속한 공간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위험이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악의가 있다면 저지해 달라고, 유혹이 있다면 거절할 힘을 달라고, 무엇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공급해 달라고, 그러나 언제나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그리고 언제나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이처럼 ‘주의 기도’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기도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삶 속에서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숨길을 느끼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