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6. 21:01ㆍ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후송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터키와 그리스 지역을 다니는 내내 그는 간신히 법을 지키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법정이나 군대나 총독같이 저명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했습니다. 빌립보에서 로마의 사법제도와 잠시 충돌한 후로 바울은 로마 관리나 군인과는 차라리 거리를 두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을 로마의 관리가 그를 구출해 준 것입니다. 바울에 대한 음모가 적발되었고 천부장은 신속히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23:23-24,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밤 삼 시’는 ‘아홉 시’입니다. 유대인들의 폭력성과 집요함을 잘 아는 천부장은 암살단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캄캄한 밤에 서둘러 호송하려고 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데 470명의 군인이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90km인데, 50km 지점에 있는 안디바드리까지는 보병이 호위한 후 되돌아오고 그다음 기병이 계속 호송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짐승(말이나 노새)을 타고 간 기록은 이곳이 처음입니다. 이는 바울에 대한 천부장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바울을 잡을 때까지 금식을 하기로 했던 암살단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본문에 나오는 벨릭스 총독은 본래 동생과 함께 글라우디오 황제의 어머니의 노예였지만 자유민이 되었던 노예 출신입니다. 그는 52~58년 유대 총독으로 재임을 했으며 “잔인하고 음탕하고 노예의 기질로 폭군의 권력을 휘두른”자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세 여자와 결혼할 정도로 음탕했으며 부패한 정치가로 소문나 있었고 유대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바울에게도 뇌물을 바라고 자주 불렀다(24:26)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천부장은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에 대해 편지를 썼습니다. 23:26-29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 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 하여 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여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바로 이 천부장의 짧은 보고서가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최초의 공식적인 평가였습니다. 즉 기독교는 전혀 로마 사회에 해로운 사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에 의하여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천부장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로마 군인들이 처음에 기독교에 대하여 받은 인상은 기독교가 전혀 위험한 종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는 이 편지에서 다시 한번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 때문에 고소당했지만 로마의 관리로서 판단하기로 그는 사형이나 투옥을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에베소에서도 들었던 내용입니다. 그럼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을 위하여 주님이 그 당시 세상 권세의 대표 격인 로마를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이 우리가 권능을 받으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천부장의 서신을 받은 벨릭스는 ‘떠넘기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 까다로운 인물을 인수받은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그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23:34-35,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바울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곳을 보내서 현지 총독의 재판을 받게 하려는 벨릭스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23:6-12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도 예수를 헤롯에게 보냈는데, 그것 또한 같은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길리기아 출신이고, 길리기아는 유대와 마찬가지로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행정 관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벨릭스는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이 문제를 헤롯 궁에 가두는 것으로 보류했습니다.
이 시기는 유대인들은 로마인 지배자들을 미워하고 하나님과 율법을 향한 자신들의 열심을 불태우던 때였습니다. 이후 약 10년 후면 예루살렘성은 불타고 많은 예루살렘 주민은 로마군에 의해 살해되는 유대 1차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바울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을까를 누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소년 시절부터 예배했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그 영광을 보이신 하나님, 약속에 신실하시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잡았다고 누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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