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88. 27:33-44. "난파"

2022. 11. 1. 13:45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 일행이 탄 배가 난파되는 내용입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풍랑으로 인해 열나흘 가량이나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하고 겨우 목숨만 유지할 정도의 식사를 한 사람들에게 바울은 음식 먹기를 권합니다. 먹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27: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어느덧 바울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배의 지휘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은 ‘영적인 구원’이 아니라 ‘육체적 구원’ 또는 ‘안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는 히브리적 표현으로(삼상 14:45) 안전하고 완벽하게 보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27:35-36,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탄 사람들은 이백칠십육 명이라고 했습니다(37절). 바울 일행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교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를 시작하매” 그제사 이들도 바울을 따라 식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들 또한 각자가 믿는 신들에게 살려달라고 간곡히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것입니다. 식사를 배부르게 먹고 이들은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38절).

 27:41-42,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육지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조류가 합하는 곳을 말합니다. 이곳은 멜리데 섬의 서북쪽에 있는 살모네타 라는 작은 섬 사이에 폭이 90m 정도 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이런 속에서는 물살이 세어서 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바울이 탄 배의 앞머리가 끈적거리는 진흙 바닥 속에 처박히게 되고 배 뒷머리는 센 물결에 맞아 부서져 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로마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할 것을 우려해 모두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지금까지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힘을 합쳐 난국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정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군인들은 그들이 호송하는 죄인들을 냉혹하게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 제국인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간수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죄수가 도망친 줄 알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수들이 도망하면 대신 죄수를 호송하는 로마 군인들이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상식도, 동정심도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을 온정적으로 대했다면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는 바로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권세의 실상인 것입니다. 목표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의 속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보았던 죄수와는 전혀 다른, 특이한 죄수를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 부장이 로마 군인들을 막아섰습니다.

 27:43-44,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결국 그 배에 탄 죄수들은 바울로 인하여 모두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는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우선 ‘구원’되리란 희망도 다 버렸습니다(20절). 선원들이 구조용 배를 타고 빠져나갈 계획을 실행했다면 그들 중 아무도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31절). 그리고 그들이 빵을 떼고 음식을 먹은 것은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34절). 또한 백 부장은 바울을 ‘구원’하고 싶어 했습니다(43절).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육지에 닿아서 완전히 구조되었던 것입니다(44절).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는 바울 서신 중에서 초장기에 쓴 편지에 속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바울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의연한 바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이론적으로 신앙을 말하지 않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누가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시간 나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