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5. 10:53ㆍ사도행전강해
바울은 당시 모든 법률적인 관점이나 베스도의 판단에 비추어 볼 때 무죄였지만 로마에 상소했기 때문에 로마법에 따라 로마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는 바닷길로는 2,700km를 가야 하고, 육로로도 180km를 가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에 대한 심문이 끝나고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그레데를 거쳐 뵈닉스로 가는 도중까지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선 유대인들의 바다에 대한 태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항해하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 후손들이었습니다. 항해는 남쪽으로는 이집트인들에게, 그리고 북쪽으로는 페니키아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특히나 그리스인들은 바다에 있을 때는 포세이돈을 위해 지은 신전에 있을 때만큼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바다는 괴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에 바다를 만드신 것은 맞습니다. 시편 기자도 그것을 강조합니다(시 146:6), 따라서 바다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바다는 어둠의 세력으로 간주되었고, 그 자체로 힘이 있으며, 어둠의 세력이 부상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애굽기의 특징적 사건은 야훼께서 바다를 가르신 일이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나님이 괴물과의 전투에서 이기신 사건으로 송축된다는 것입니다(시 93:3-4). 또한 다니엘이 위대한 환상을 보고, 사악한 제국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지만 결국에는 전복된다는 역사를 설명할 때, 괴물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을 씁니다(단 7:3).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으로서는 특이하게 노련한 바다 여행가였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 전에 기록된 고린도후서 11:25에서 말하듯이, 그는 이미 세 번이나 난파를 경험했습니다. 같은 본문에서 그는 하루 밤낮을 나무 기둥 같은 것을 붙잡고 바다를 떠다닌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바울이 지금 마지막 바다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27: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려고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 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누가는 바울의 가이사랴 감옥 근처에서 2년 동안 보내다가 배를 타려는 그들과 합류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는 항해와 난파에 대해 매우 상세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언급하면서 고대 항해술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로마까지 전해지기까지는 실로 멀고 험난한 여정과 많은 어려운 사건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바울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도대의 백 부장 율리오”는 황제 친위대를 말합니다. 아마도 이 부대는 특별 임무를 위해 정규 편제에서 분리된 정예부대로서 곡물을 공급하는 로마제국의 병참부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 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이 배는 가이사랴에서 출발해서 아시아 해변에 있는 여러 지방을 경유하여 목적지까지 항해하였습니다. 아리스다고가 이 항해에 동행한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바울을 따랐으며, 에베소에서 도시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이오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19:29). 그는 로마에서 바울과 같이 죄수가 되었는데(골 4:10), 바울의 전도 여행에 있어서 충실한 동역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바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자원하여 승선했을 것이며, 누가는 주치의로서 동행이 허락되었을 것입니다.
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당시 로마의 곡물은 대부분 곡창지대인 애굽에서 가져왔으므로 큰 정기 무역선이 많았다고 합니다. 바울 일행은 계속 배를 타고 소아시아를 거쳐 마게도냐까지 가서 육로로 헬라를 통과해 배를 타면 안전하게 로마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율리오는 무라에서 배를 갈아타고 직접 로마로 가는 항로를 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항해는 강한 북서풍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27:9-10,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역풍 때문에 이미 예정한 기간보다 많이 지연되었고 미항에서 바람을 피하는 동안 금식하는 기간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는 대속죄일(7월 10일은 지금의 9월 20일)을 말하며 보통 안전한 항해 기간은 유월절과 오순절(3월~5월)부터 시작해서 금식을 한 이후 닷새가 되는 장막절까지라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9월 15일 이후의 항해는 예측 불허로 11월 11일 이후 3월 5일까지의 항해는 자살 행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즉 이제 그들의 항해는 이미 위태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 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11절).
27: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그들이 떠나자고 한 것은 미항은 작은 시골이서 숙소를 구하기도 힘들고 바람을 막기에는 만이 너무 적어서 춥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더 번화하고 따뜻한 뵈닉스로가서 겨울을 지내기로 한 것입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서쪽 65km 지점에 있으며 지형적 조건으로 인하여 북서풍을 막아 기후가 따뜻하며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항해는 고난의 길이 시작이 되는 항해였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전도사역은 사마리아와 키프로스와 에베소의 마술사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바다라는 유대교에 있어서 어둠의 세력으로 표현하는 그 권세가 세상의 권세의 왕이 사는 로마에 가는 바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위협을 뚤어야만 로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인생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원리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경배하는 데 하나님은 왜 우리들의 인생에서 간섭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죄는 덮어졌고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조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른 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바울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긴 여정에서 간섭하신다는 것을 믿고 알기에 이처럼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믿고 있는가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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