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84. 26:12-23. "바울의 회심사건"

2022. 10. 18. 11:37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이 고발당한 내용과 자신의 회심 사건을 연결시켜서 자신을 변론하는 내용입니다. 12~18절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바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쟁기질하는 사람이 끝에 가시처럼 뾰족한 쇠를 박은 막대기를 들고 소를 몰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때 소가 발뒤꿈치로 차면 막대기에 박힌 쇠에 찔리거나 추에 맞아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부활을 통해 새 일을 하시는데, 교회를 박해하는 바울은 소와 쟁기와 그 모든 것을 운전하시는 그분이 가기를 원하는 방향에 저항하며 발길질하는 소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울에게 두 가지의 소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첫째, 26:16,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바울은 예수님의 종으로서 증인이 되어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그리고 앞으로 주어질 환상에서 보고 들을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26: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람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바울은 자신이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할 일에 대하여 소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그의 임무는 이방인의 눈을 열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런 일로 이방인들이 사탄의 세력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향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즉, 그들로 ‘회개’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들의 자범죄를 참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조류를 뒤로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의 원어적이 뜻입니다. 셋째, 그들은 죄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용서의 핵심은 단순히 개인이 깨끗한 양심을 얻게 된다는 것, 아무런 비판이나 정죄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에서 느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 죄 용서를 받았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확장된 가족의 온전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따르면 이방인은 믿는 유대인들과 같은 가족이라고 바울이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점입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권위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4:19, 5:29). 바울에게 권위란 단순히 법정으로부터 받는 명령이 아니라,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물려받은 유대교 전통 전체의 ‘인간 권위’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항변 하고 있는 것입니다.

 26:20-21,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그런데 자신이 예수님이 명하신 이방인들에게 회개하고 했고, 그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에 대해 유대인이 갖는 반감의 주된 부분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 ‘율법 밖에 존재하는 열등한 종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의 일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축하해야 하는 일인데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변호합니다.

 26:22-23,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첫째, 자신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성경에 근거하는 메시지라고 바울은 향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전하는 것은 당연히 메시아 예수의 메시지다. 예수님은 위대한 다윗보다 더 위대한 자손으로서, 그분 자신이 이스라엘의 희망의 성취시다. 시편과 예언자와 모두가 이 사실의 증인이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이 메시지는 고난 받는 메시아에 대한 메시지다.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오랜 계획안에서 그 고난은 반드시 있어야 했고 이 메시지는 그 고난에 대한 해석이다. 그리고 그 고난은 ‘성경 말씀에 따라서’ 구원과 속죄를 가져올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살아난 사람이 되실 것이다. 누가는 부활절의 요점이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우리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선포했고(4:2), 바울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섯째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빛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비춘다는 메시지입니다. 바울과 누가에 있어, 그리고 신약 전체에 있어 좋은 소식의 요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세우신 계획의 성취이기 때문에 마침내 모든 창조 질서가 예배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 내용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방식으로 이방인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시는지를 상당히 자세하게 보여 주는 하늘의 환상에 순종했을 뿐이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할 뿐이고, 그럼으로써 내 백성의 가장 오래된 전통과 가장 풍요로운 희망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완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죄라는 것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로 판정이 났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전한 메시지가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온 세계를 구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도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는 전쟁과 억압과 혼란의 연속이었는데 만약에 바울이 전한 복음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바울 덕분에 우리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