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85. 26:24-32. "바울 변론에 대한 반응"

2022. 10. 21. 16:16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은 바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자.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의 반응에 대한 내용입니다. 26:24-25,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바울이 논리적으로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입증하면서 점점 전도적인 내용으로 접근해 오자 베스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큰 소리로 바울의 말을 중단시켰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겠지만,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고 유대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로마 총독에게는 생소하고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바울이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미신적인 생각에 빠져 어리석은 헛소리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미치게 만들었다”는 것은 너의 그 훌륭한 학문(책 또는 성경)이 너를 미치게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현실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던 로마인에게는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미친 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미친 자로 취급받으셨고(막 3:21, 요 10:20)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미친 자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고후 5:13).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참되고 온전한 말을”하고 있다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26;26-27,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로마인들의 친구로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는 몇몇 선조들처럼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바울이 2~3절에서 인정하듯 유대교의 전통을 이해했고 바울이 본문에서 가정하듯이 아마도 예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선지자를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만일 아그립바가 예언자와 모세의 말을 믿고 있다면 그들이 말해온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믿을 수 있다고 바울은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아그립바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일 예언자와 모세를 믿지 않는다면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시되고 체면도 서지 않을 것이고, 믿는다고 하면 바울이 말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아그립바가 일부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헤롯 대왕은 에돔인이었지만 대대로 내려오면서 유대 여자들과 결혼)이었으므로 성경 진리에는 마음속으로 동의했을 것이라고 바울은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아그립바 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아그립바 왕의 대답은, 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아그립바는 이 질문을 간단하게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상한 학자의 질문에 왕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 하고 왕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아그립바 왕 또한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을 것입니다. “난 믿지 않는다”라고 하면 자기 백성의 상당수에게 인기를 잃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는다고 하면 바울은 그 말을 붙잡고 결말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을 믿으시군요 그렇다면 왜 예수를 믿지 못하십니까?”라고, 이것이 바울이 8절에서 주장하려던 요점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그러나 아그립바는 곤란한 상황에서 영리하게 대처합니다 “너는 지금 여기서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말함으로써 바울의 질문에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 또한 아그립바 왕이 당황했을지언정 영리한 반응에 대하여 대응합니다. 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제 바울의 변론은 끝났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은 죽음에 이를 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쇠사슬에 메일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31절).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물론 베스도가 용기를 내서 바울을 풀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도가 그런 사람을 구류하고 있었고 그가 황제에게 상소를 했는데 베스도가 그것을 기각했다는 사실을 황제가 알면 황제는 베스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 집권층도 기분 나빠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이제 바울이 황제의 손님으로 로마에 갈 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군인들의 철통 같은 호의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그리고 가난한 전도자 바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배 삯도 내지 않고 로마로 호송될 수 있으니 평소 소원이었던 로마 제국의 수도에서 본격적인 전도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빌 1:12-14, 4:22). 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시간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