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8. 10:50ㆍ에베소서강해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가정 내에서의 역할과 은혜로운 태도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종과 주인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자녀들과 부모들을 향한 명령과 종들과 주인들을 향한 명령에서 놀라운 것은, 바울이 자녀와 종도 부모와 주인과 마찬가지로 소위 ‘권리’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고대 철학자들이 행동 규약을 만들 때 그 무게는 항상 한 곳으로 쏠려 있었다고 합니다. 즉 종과 자녀는 순종해야 했고, 그것이 존재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호 책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부모는 자녀를 합당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증오를 느끼고 반항하거나 가출하고 싶어 할 만큼 아이들을 혹독하게 대하거나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주인들은 그들에게도 주인, 즉 주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당시 로마의 가정생활은 파탄이라고 할 만큼 심각하고 불안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바울이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기독교의 이상적인 가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관습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자식을 마음대로 벌주고 양육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되면 노예로 팔기도 했고 심지어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여성들의 지위도 매우 낮았고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적 문화를 알고 본문을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효도는 십계명 중 둘째 석판에 새긴 대인 관계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출 20:12). 부모를 공경하라는 바울의 말은 앞의 구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부모에 대한 순종은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종하는 것은 공경에서 비롯되면 실천된다는 것입니다. 공경 없는 순종은 노예의 굴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바울의 말은 출 20:12절과 신명기 5:16절을 묶어서 자유롭게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신약 시대의 믿는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자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담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본문에서 아버지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는 가정의 책임 있는 지도자이고 자녀 교육의 책임이 있는 반면 어머니는 그의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5:22-24). 가정에서의 훈련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간섭하고 필요 이상의 권위로 윽박지르게 되면 자녀로부터 큰 반발과 노여움을 사게 된다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의 양육에 대해서는 주님이 그들의 관계와 그들의 가르침들과 배움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9절까지는 종과 주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 당시에 로마 제국에는 약 6천만 명의 종(노예)이 있었던 것을 추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전쟁 포로나 죄수, 어릴 때 팔리거나 빚으로 넘겨진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종의 생활은 매우 처참하였으며, 주인들은 종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고 생사의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했으며 동물처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제도를 찬성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엄연한 사회현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5-7,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본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바울은 노예 제도가 선하다고 믿었는가? 아니면 본문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우선 바울시대에 노예 제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우리가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현대 세계는 당연히 전기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기가 없으면 원시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일 것입니다. 바울의 세상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대다수 가정에서 종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종들에 대한 대우와 법적 규제는 나라마다, 소유주마다 아주 다양했다고 합니다. 많은 종들이 좋은 대접을 받고 가족들에게 신뢰를 얻었지만, 한편 경솔하고 비인간적인 주인들이 여려 가지로 종들을 이용하고 학대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울 당시의 세상의 흐름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구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는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모든 노예 제도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으로서 비그리스도인 주인들을 위해 일하던 세상에서 즉각적 해방을 주장하는 것은 도리어 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혜롭게 다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본문은 모든 것을 정리해 줍니다. 즉 메시아 앞에서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평등을 언급할 때든지, 교회 안에서 출신 배경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평등을 말할 때든지, 본문에서처럼 주인과 종의 평등을 언급할 때든지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다”(삼상 16:7)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바울의 ‘윤리’라 여기는 것에는 강력하고 확고하게 뿌리박은 도덕적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윤리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윤리의 핵심은 또한 가정에서와 종과 주인 사이에서도 견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을 신뢰하여 바울이 이야기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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