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6. 16:35ㆍ에베소서강해
앞 장에서는 예정된 자들을 택하시고 우주를 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땅 위와 하늘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아래로 모여올 것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본장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이 영원한 계획을 실행하시려고 어떻게 죄인들을 성도로 만드셨으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두셨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류는 자기 뜻대로 방향을 잘못 잡고도 그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정기적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확신에 차 있는지 강조하려는 듯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속에서 드러난 욕망과 열망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러므로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아주 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성 윤리에 대한 논의에서 유난히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관점은 고사하고, 인간적 관점으로 잠시만 생각해 봐도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강렬한 욕망은 엄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성이 아주 공격적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정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 지역의 주민 전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행동을 아주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관점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단지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자기희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저 육신의 욕망을, 또한 동일하게 마음의 욕망을 따르면 우리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의 결과, 즉 우리가 이미 ‘죽어’있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에 대해 바울은 본문을 통해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독자들에게 한 때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과거를 5가지 특징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첫째로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허물”은 고의성이 없고 생각으로 죄를 계획하는 것이라면, “죄”는 고의성이 있고 행동으로 죄를 짓는 것으로 정의를 하지만 서로 비슷한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들은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상의 풍조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적인 조직 체계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성도들을 미워하는 불신앙 무리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요 15:18). 그러므로 ‘회개“란 개념은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탄에 대해 유대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표현한 것으로서(막 8:33) “이 세상 신”(고후 4:4), “악의 영들”(6:12)로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탄은 인간이 사는 지상과 천사들이 사는 천상 사이의 중간 지대에 살면서 인간들을 유혹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삼층천의 개념인 것입니다(고후 12:2). 네 번째로 “육체의 욕심에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욕망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 안에서 살지 않고 이기적인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태어날 때부터 진노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범죄 한 아담에게서 나서 그 성질을 받아 원래 태어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죄의 자녀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해결책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4-6,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이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온 인류의 확고하고 상습적인 행동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과 인간성의 궁극적 파괴로 이끈 것이 문제라면, 하나님이 제공하신 해결책은 죽음을 통과하여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왕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닦으신 길입니다. 어떻게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바울은 1장 전체에서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께 속한 사람을 그분 ‘안에’ 있는 존재로 보고 있으므로, 그분에게 사실인 것은 그들에게도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살리심을 받았으므로 그들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영광 가운데 하늘에 앉으셨으므로 그들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자비라고 말합니다.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본문은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3~6절)의 결론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 보여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시다. 그분은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완전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분의 은혜는 그 무엇보다도 풍성하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비를 아낌없이 주셨다. 누군가가 하나님은 인색하다, 혹은 심술 굿다, 혹은 속이 좁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암시할 때면, 언제든지 이 구절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풍성한 자비와 사랑, 즉 부활과 승천의 은혜는 이 땅과 미래 세상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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