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3. 10:44ㆍ에베소서강해
오늘 본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에 대해서 바울이 논증하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이방인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가족인 이스라엘에 견주면 ‘외국인’이요 ‘나그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유대 율법이나 할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친히 이루신 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그 민족 종교의 심장부였을 뿐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에 사는 유대인들의 순례 성지였습니다. 또한 기념행사와 축제가 열리는 장소였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정치, 사회, 음악, 문화의 중심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그곳에 거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새 성전을 짓고 계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전은 돌이나 아치형 장식, 기둥, 제단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거처로 삼으신 곳은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개념을 이미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할 때까지 아무도 그것을 말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 건물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이 이제 거하기로 작정하신 ‘공간’인 사람들 자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자체를 저주하셨고 복음서에서 성전의 멸망에 대해 계속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마 24:2, 막 13:2, 눅 21:6). 이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예수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복음을 따라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의 마음과 삶, 특히 그들의 공동체 안에 거처를 두기를 하셨다고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즉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는 것입니다(고전 3:160.
2:17-18,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본문에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는 이방인을 말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이 두 그룹에 평화가 선포된 것은 둘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어야만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최대의 기쁜 소식입니다. 평화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복음 메시지가 선언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이는 외부에서 유대교를 바라보며 유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 마음이 끌렸던 이방인들에게 놀랍고 아주 신나는 일이었던 만큼,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기이하고 혁명적으로 들렸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또한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혁명적인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거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똑바로 설교를 하면 많은 성도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통잇돌이 되셨느니라”바울은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모두 동일한 시민 즉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이나 나그네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바울은 앞서 가족의 비유에서 그 가족이 거처할 집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이 집의 터는. 즉 새 ‘성전’은 두 가지 재료가 한 걸물에 녹아들도록 지어져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건물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왕이신 예수가 전 세계에 가져오신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선포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영광스러운 곳에 따로 자리할 ‘돌’, 건물을 하나로 만드는 돌이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예수님을 ‘돌’로 언급한 신약의 다른 구절들(마 21:42, 행 4:11, 롬 9:33)과 이 단락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대부분 시편 118:22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관련한 사건들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자 계속해서 옛 성경을 찾아보고 숙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건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퉁이 돌에서 시작된 건축은 여러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연결되어 성전이라는 한 유기체를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라고 바울은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성부)이 거하실 처소가 계속 지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놀라운 비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몇 가지 도전을 줍니다. 오늘날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원래의 유대인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고 생각할까?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항상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이 마음에 품은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면, 오늘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인종적, 문화적 차이는 무엇일까? 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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