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9. 12:04ㆍ요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전날 세례 요한을 통해 두 제자를 취하신 것과는 달리 이날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를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기 전에 벳새다 사람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43-44).
1:45-46,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나다나엘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으로 본서에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열두 제자들을 소개할 때 빌립과 바돌로매가 함께 소개되는 것을 보면(마 10:3, 눅 6:14) 바둘로매일 가능성이 많다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나다나엘은 평소 메시아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란 말에 별로 관심이 없어합니다. 이는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예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미 5:2). 또한 당시 갈릴리에서는 열심당원의 본고장인 만큼 광신자들이나 거짓 메시아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1:47-48,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무화과나무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나무이며(왕상 4:25), 그 무성한 그늘은 휴식하거나 공부, 명상하는데 시원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다나엘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묵상을 하고 있었을까?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49절).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묵상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1:50-5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본문을 잘 이해하면 왜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르고 이에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의 꿈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기 합니다.
야곱은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몸에 겉옷만 걸치고 도망하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다리의 발은 땅에 닿아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고 천사가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곁에 서시어, 그가 평안히 번성하여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사다리에서 핵심은 하나님이 그곳에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이 그 땅으로 돌아온 다음에, 그리고 훨씬 후대에 그의 자손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확보했을 때, 벧엘은 이스라엘의 주요 성소 중 하나, 초기 이스라엘의 예배가 드려지던 곳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천사가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야곱의 꿈 전승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그분을 예배할 때 천사들이 오가면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고, 하나님이 정말 함께 하신다는 신앙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상당부분은 예수님이 성전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단순한 약속의 성취를 넘어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계실 새 길을 개적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미 1:14에서 암시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온다면 하늘과 땅이 서로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너희가 반드시 천사를 직접 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너희도 천사가 함께 있음을 드러내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아래에서 야곱 같은 간사한 자가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2), 어떻게 이스라엘이 되었는가를 묵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고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집, 성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천사가 오가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우리들 아프고 슬프게 해도 하나님은 우리들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우리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기쁨도 나누면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면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한복음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7. 2:13-25. "성전을 정화하시다" (0) | 2023.02.13 |
---|---|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6. 2:1-12.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다" (0) | 2023.02.10 |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4. 1:35-42. "첫 제자들" (0) | 2023.02.08 |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3. 1:29-34. "어린 양과 성령" (0) | 2023.02.07 |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2. 1:19-28. "세례 요한의 증언" (0) | 2023.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