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4. 1:35-42. "첫 제자들"

2023. 2. 8. 11:28요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소개로 제자로 따르게 됩니다.

 1:35-37,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은 자기 스승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을 키우는 문화가 아니어서 ‘저 사람은 양이다’라고 하면 성격이 온순하다거나 아니면 양띠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양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로 쓰이는 짐승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죄와 관계가 있는 짐승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써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방세력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제자들은 이런 깊은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린양’이라고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에 두 사람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원래 랍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합니다. 이 당시에는 정규 율법 학교를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랍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규 율법 학교에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물은 것은 “거처가 어디입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지금부터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에게 배우겠다는 뜻입니다. 이 당시 스승과 제자사이는 오늘날 도제 형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즉 어떤 것을 배우려면 반드시 선생을 찾아가서 같이 살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열 시쯤 되었더라”예수님은 지금 진리에 관심이 있는 자들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또한 제자들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 두 제자는 세례 요한에게 스승으로써 만족을 했다면 예수님을 따라갔을까? 아마도 세례 요한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스승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을 품어줄 스승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지금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너희들도 진정한 스승을 찾아보기를 갈망하라 그러면 찾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에게 나아갈 때에는 우리의 마음 안에는 무엇을 추구하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0-42,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안드레면 한 사람은 누굴까? 많은 신학자들은 본서의 저자인 야고보의 동생이면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십 대였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아주 오래된, 그리고 자신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형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들은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당시 갈릴리는 열심당원의 본 고장이란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5:37에 유다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6 년경에 세금문제로 반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즉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마태복음 16:17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여기서 “바요나”는 요한의 아들이란 뜻이지만 그 당시 속어로는 ‘열심당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열심당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와 안드레가 기다리던 메시아는 어떤 사람일까?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믿음이 없는 자들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어떻게 평가했을까를 한 번 생각하면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요한은 아주 오래 전 자신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요한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요한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간직하고 그 마음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