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2. 1:19-28. "세례 요한의 증언"

2023. 2. 6. 11:33요한복음강해

 

지금까지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에 대해 기록하였고, 이제부터는 이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 하는 내용들이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소개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구약 성경이 끝난 후 하나님의 능력의 종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라기 이후 무려 사백 년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례 요한이 유다 광야에 나타나서 설교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에 많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그 반응이 뜨거웠으면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세례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물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자칭 타칭 메시아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회를 동요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 지도층들은 이런 자들을 감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이 보기에 괴팍한 행동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언자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물에 빠뜨릴 거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요단강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대답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합니다(20절).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나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은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전에 돌아올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읽어 왔습니다(말 4:5). 엘리야는 성경에서 평범하게 죽지 않고 곧장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왕하 2장). 그러므로 이제 그가 돌아와 하나님의 새로운 날을 알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만이 위대한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리야를 모세 다음 서열에 두었다고 합니다. 신명기 18:15-18에서, 하나님은 모세 같은 선지자를 세워 백성들은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 사람, 즉 장차 올 ‘모세 같은 선지자’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6:14). 그러나 세례 요한의 대답은 자신은 아니라고 합니다.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이사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포로 되어 갔던 유다 백성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길을 닦아 놓고 ‘이 길로 오라’고 소리를 치면서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방세계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시는 분을 자신은 지금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이런 세례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의 아주 특이한 사역이었고, 그래서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가 요한에게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닌데 왜 세례를 주느냐고 묻습니다(24-25).

 1:26-27,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구약 시대에는 정결의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지었던 사람이 죄를 자복하고 속죄제를 드린 후 제사장에게 오면 제사장이 우슬초라는 풀에 물을 찍어 뿌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번제 없이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고 오는 자를 물속에 집어넣어서 담그는 의식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도 없는 것이고,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모든 것은 “내 뒤에 오는 그”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해 증언하러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8). 시간 순서로는 그가 메시아보다 먼저 왔지만, 그는 메시아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메시아보다 먼저 와야 했던 이유는 당연히 길을 미리 정비하기 위해서라고 세례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복음서에서, 더 나아가 초기 기독교 선포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세례 요한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사역이 어떻게 시작을 했겠는가를~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아주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에게 잡힌 후 예수님의 사역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막 1:14).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마음에도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인간입니다. 그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를 때 인간적인 욕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싶을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이런 세례 요한의 자세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도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 또한 초심일 때는 자신도 세례 요한처럼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자신을 추종하는 성도들이 많아지면 자신도 모르게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이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마치 교황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바울 또한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 (고후 4:5)에서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세례 요한처럼 “나는 한낱 소리일 뿐이다”고 말한, 그의 겸손과 참된 위대함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만약 내가 세례 요한처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고 능력이 많으면 요한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