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9. 21:38ㆍ고린도전서강해
앞절에서는 사랑의 우월성(1-3절)과 완전성(4-7절)을 이야기했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랑의 지속성과 영원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은사들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쓰러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13:8-10,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사랑은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들어갈 새 세계의 생활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그곳에서 우리가 말할 언어의 문법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사랑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온전히 갖추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거리로 내세우던 것들보다 사랑의 영속적 확신을 우위에 둡니다. 예언? 오는 세상에서 누구에게 예언이 필요하겠는가? 방언? 모두가 단번에 다른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에서 방언으로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특별한 지식? 우리는 알 수 있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전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나 속한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강물입니다.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랑도, 지위 대결도, 언쟁도 하지 않는 나라로, 미래로 흘러가는 하나님의 강물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우리 몸을 맡기도록 초청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미래,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 배우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이교도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유대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들의 세계관, 시간관, 역사관, 자아관의 핵심에 두는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에서 미래로의 전환을 표현으로 어린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는 것으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즉 "성장해서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방언, 예언, 현명한 지식의 말은 어린아이의 놀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럼 성인의 일은 무엇일까? 진정 영적이고 정서적이고 인격적인 성숙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떤 방해에도 꺾이지 않고 하나님의 새 나라에까지 갈 수 있는 인간성을 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현재에서 미래로 전환을 표현하는데 거울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는 모든 것이 앞뒤로, 좌우로 뒤바뀝니다.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파악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현재 시간과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어느 정도, 하나님이 인간 피조물에게 바라시는 뜻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또렷해질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이란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새 세계, 예수님의 부활에서 이미 얼핏 드러난 세계에서는 우리들의 지식도 완전해질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도덕적 요청은 의무라는 틀 안에서 제시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저 먼 표준에 도달하라는 힘겨운 슬로건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삶 전체를 하나님의 미래라는 틀 안에서 파악합니다. 곧 나사렛 예수의 인격 안에서, 그분의 부활 안에서 현재로 파고들어 온 하나님의 미래입니다. 그 미래에서, 바울은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 무엇보다 사랑의 세계를 봅니다. 그래서 현재 안에는 그 미래를 지시하는 세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을 보고, 모든 것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하나님과 그분이 미래에 하실 일을 앞서 바라보는데, 그 일은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보장되었습니다. '사랑'은 결국 우리들이 가야 할 최종 목적지의 생활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생각하라고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뿐 아니라, 분파 다툼, 주의 만찬에서 지속되는 사회적 분열, 영적 은사를 자랑하려는 유혹에 맞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은사는 각 시대에 교회를 세우는 일시적 도움이고, 그런 만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지금은 미완성이지만 하나님의 새 세계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재림을 하셔서 완성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지금 내 안에는 어떤 사랑이 있는지를~
'고린도전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44. 14:6-12. "교회에서는 명확하게 말하라" (0) | 2022.02.14 |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43. 14:1-5. "예배의 우선 순위" (0) | 2022.02.10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41. 12:31하-13:7. "사랑의 특성" (0) | 2022.02.08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40. 12:27-31상. "은사와 사역" (0) | 2022.02.07 |
[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39. 12:21-26. "각 지체의 책임" (0) | 202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