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1. 1:1-25. "가브리엘의 방문"

2021. 9. 30. 15:59누가복음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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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책들은 미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틀립니다. 성경은 어느 특정한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책이며 신약은 특정한 공동체를 위하여 만들어진 책입니다. 복음서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은 수 천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을 읽는 첫 독자는 누구이며 공동체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누가복음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보다 신약 성경이 해석하기가 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공동체의 성격을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호 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성경 한 글자 한 글자가 무호 하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무호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을 할 때 문자 주의적으로 해석을 하지 말고 은유적으로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의 기록 목적과 세례 요한의 탄생 이야기가 나오는 내용입니다.

 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여기서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과는 다른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의 말씀은 '성육신 말씀'이지만 누가복음에서의 말씀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서 계시된 복음입니다. 누가는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복음서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도적 증거의 도움을 받아 복음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책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데오빌로가 누군지는 잘 모릅니다. 고위 관료인지 아니면 가공의 인물인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방인이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히브리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bc 2세기경 프톨레미 2세가 '70인 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데오빌로도 그 성경을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왜 그런 추즉을 하느냐면 구약을 알아야지 메시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아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라라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헤롯은 에서의 후손 이두매 태생의 이방인으로서 지략과 용기가 탁월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등 많은 건축물을 만든 와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일반 백성들을 착취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헤롯은 굉장히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비호 아래서 대제사장의 임명이나 폐위까지 간여하여 그 타락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 시기에는 종교적으로 타락한 시기였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희망이 없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특히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간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영적 암흑기를 마감하고 위대한 여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그 당시 문화에서는 자식을 낳지 못하면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식 없이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부부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심정은 마치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1:8-9,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이 당시 유대 제사장들은 약 2만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생에 한 번 성소에 분향을 하는 것도 행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자식을 준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1: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가브리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good news), 헬라어로는 '유앙겔리온'이란 '복음의 선포'를 뜻합니다. 노부부가 평생의 소원인 자식을 얻는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복음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1: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본절은 하나님에게 깊은 감사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당시 여성의 불임은 유대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요 수치였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여겼습니다. 누가는 엘리사벳의 임신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소식을 받을 때 기쁨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노부부가 자식을 잉태하는 기쁨일 것입니다. 얼마나 기쁠까요~ 이 기쁨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생기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이 기쁨이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는 지금 사가랴와 엘리사벳 같은 기쁘을 가지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