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61. 17:20-37. "그 나라의 도래"

2021. 12. 21. 20:02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마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해 질문한 이유(20절)는 구약에 예언한 소위 '주의 날'(사 11:10, 렘 31:31)이 이미 도래했다는 소문이 당시에 한창 떠돌던 무렵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을 것이며 예수께서 과연 그 같은 질문에 능히 대답할 수 있는 메시아인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건설된 정치적, 민족적 왕국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의 압제에서 구할 다윗과 같은 강력한 메시아를 원했던 것입니다. 즉 그런 메시아가 언제 오느냐는 말이며 그리고 당신이 그런 메시아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1절). 이 말은 마음속이라고 하는 내면적이고 좁은 의미가 아닌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어떤 마음 상태를 지칭하는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이미 11:20에서 예수님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나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역사 속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본문에서 '인자의 날'은 다니엘의 예언(7장)처럼 '인자 같은 이'가 고난 뒤에 하나님께 정당성을 인정받을 그날을 가리킨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억압자, 즉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뜻을 반대했던 권력이 파괴되는 것이 그 징조가 될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 이 권력은 네 번째 '짐승', 가장 강력한 이방 군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과 그 권위 체계에 몰두했던 이스라엘의 관료들과 성전에서 비롯된 사고방식과 습관을 지닌 바리새인이 그분의 가르침과 하나님 사역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대한 세력으로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 임할 두려운 파멸의 경고하시는 모습을 되풀이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본절 말씀은 예수님이 유대교 예언서의 '묵시'언어를 사용하여 같은 경고를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자의 날'은 참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이 사람이 고난 뒤에 결국 정당성을 인정받는 그날입니다. 인자의 정당성 인정은 평화의 복음을 외면했던 도시와 성전을 파괴하는 형태를 띨 것이다고 예수님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이어지는 종말의 때는 37절을 이해하면 해석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본절에서 독수리는 로마제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면 오늘 본문 말씀이 해석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 군대가 오면 무작정  나와서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다. 재산을 챙길 생각일랑 하지도 말아라. 잠시 동안 일상이 이어지겠지만, 곧바로 악몽의 닥칠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조언은 길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생필품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 말씀은 자연 세력이나 초자연 세력이 등장하여 어떤 동네나 지역, 혹은 기존에 알려진 세계를 유린할 사건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도리어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여러 경고처럼 본문은 적군이 느닷없이 침입하여 파멸을 초래할 그때를 가리킵니다. 결국 예수님의 경고는 주후 70년에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오면 세상의 종말 즉 온 우주적인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종교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죽어서 하나님에게 심판을 잘 받아서 다시 말하면 이생에서 덕을 잘 쌓아서 극락에 간다는 불교와 다를바가 없는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우리가 죽어서 심판을 받을 때 면죄부로 사용하기 위하여 빛과 소금이 되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들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수수방관해도 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참여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우리들의 개인적인 구원보다는 공동체적인 구원 즉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다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이래야만 우리 기독교가 사회에서 비판을 받지 않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가 욕을 먹고 세상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이런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가르친 목회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무엇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 나는 과연 세상을 위하여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