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2. 15:00ㆍ누가복음강해
오늘 말씀은 어린아이와 부자 관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누가는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듯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림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면 완성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 누가는 겸손과 감사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미래에, 겸손하고 끈기 있는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는 현재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신다는 두 비유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제 누가는 계속해서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이끌면서 이 비유를 근거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오는 시대'의 생명에 참여하는 특별한 도전을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여기서 어린 아이는 갓난아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유아 세례로 연관을 지우면 안 됩니다. 다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메시아라고 하니깐 자기 아기에게 추복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막아선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6절)라고 하셨습니다. 갓난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는 자기를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이들에게 보이는 완전한 신뢰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겸손한 신뢰의 완벽한 본보기입니다. 예수님은 낭만적이거나 감성적인 아동관을 제시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마을의 일상에서, 또 여러 형제자매의 맏이로 자라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 존재인지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마 젖을 먹고,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환하게 옷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너무 자신만난하고, 너무 철저하며, 너무 단정해 보이는 부자 관리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어린아이와 대조를 이룹니다.
18:18,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본문에서 영생은 '오는 시대'라는 그 시대의 단어를 종종 '영원'으로 번역하는 탓에, 보통 '영생'이란 표현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본절은 '어떻게 하면 오는 시대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으로 해석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새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며, 타락이나 부패, 악, 슬픔, 고통, 두려움, 죽음에서 자유로 우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이 서로 어울려 살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고대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세상을 통치하실 때 이런 일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현시대로 가져오고 계셨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옛 시대의 권력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겸손하고 끈질긴 신뢰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 그곳에서 새 시대의 생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관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켰다고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부자 관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2절). 예수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부자 관리에게 옛 가치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재산은 땅을 약속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재산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가치관을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회개'의 신약적 의미는 '시대의 정신을 거스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하늘의 보화'는 우리가 죽은 뒤에나 소유하는 그런 보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본래 의도했던 연합을 이룰 때까지 하나님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된 보물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들이 느끼는 그 기쁨과 즐거움일 것입니다. 재물을 옛 시대의 정체성으로 보면 다음 본문들도 해석하기가 쉬워집니다. 예수님은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4-25절)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옛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8:26-27,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느니라" 이처럼 구원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율법을 잘지킨다고 해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십계명 조차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계명인 '탐심'에게서 자유로운 인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구원, 영생은 하나님 나라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18: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본절에서 가족을 버리라는 것은 옛 정체성과 가치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오는 시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는 시대는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현재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고 죽어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거듭남을 동반합니다. 거듭남은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나 사랑하고 의지했던 돈, 권력, 명예, 학벌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그냥 덮히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에 가면 그만이지 뭐 어렵게 생각할 것이 뭐야"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나가도 항상 불안하고 불만이 많고 누구와 자꾸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이 가득하면 하나님이 차지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에 있는 것들 하나님보다 더 줗아하는 것, 돈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그 빈 공간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내려놓음의 싸움입니다. 불교는 그 내려놓은 공간에 부처가 차지하는 것이며 힌두교 또한 내려놓은 공간에 각자가 믿는 신들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또한 내려놓는 공간에 하나님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이런 내려 놓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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